혈족상잔

뱀상어는 어미 몸속 알에서 부화한 뒤 헤엄쳐 다닌다. 놀랍게도 새끼들은 자궁 속에서 서로 잡아 먹는다. 여러 개의 기다란 촉수가 자라난 배아들은 어두운 자궁 속을 돌아다니며 형제 알들을 먹어 치운다. 어느새 이빨이 자라기 시작하고 몸집이 커진 배아들은 작은 배아들을 뜯어 먹는데 한 마리만 살아남을 때까지 이 과정이 계속된다. 먼저 부화한 검은독수리 새끼 ㄱ은 새끼 ㄴ이 부화한 지 몇 시간 안에 공격을 개시한다. 특히 ㄴ이 부모가 주는 먹이에 눈독을 들일 때마다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 간다.

이런 ‘유아살해’ ‘형제살해’는 사다새, 황제펭귄, 백로, 미국황조롱이 등에서도 나타난다. 생태계가 풍부할 때는 혈족이 서로를 존중하고 아량을 베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가족 구성원이 서로 빼앗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무서운 적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단위는 진화론적 이기주의의 극한을 보여주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가족집단 안에서 유전적으로 가까운 혈족들이 틈만 나면 유한한 자원을 둘러싸고 죽음의 전쟁을 벌인다. ‘먹이싸움’ 때문이다. 형제 살해만 있는 게 아니다.

사마귀는 교미 중에 암컷이 몸을 돌려 수컷의 목을 베어버리는데, 목 잘린 수컷은 놀랍게도 교미에 더욱 힘을 쏟는다. 목이 잘리면 뇌 바로 밑 신경절의 제어기능이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 열정적이될 수밖에 없다. 암컷은 이렇게 수컷을 살해함으로써 열정적인 교미와 먹이라는 두 가지 보상을 얻게 된다.

1년생 갈라파고스 물개는 어미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갓 태어난 새끼 물개에게 사납게 덤벼 들어 목을 물어뜯는다. 어미는 동생을 죽인 1년생 새끼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한 두 해 정도 더 키워준다. 동물들은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가젤과 이를 뒤쫓는 치타처럼, 사슴이나 얼룩말을 노리는 표범이나 사자처럼 생물종 간의 사투만 벌이는 게 아니다. 혈족 간의 싸움도 치열하다.

인간도 별 다르지 않다. 자식이 아버지를, 어머니를,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이 텔레비전의 ‘동물의 왕국’에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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