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비평/공연에도 ‘웰빙바람’ 분다

-전지영

웰빙(well-being)이 사회의 큰 화두 중의 하나가 된 지금, 공연장 내에서도 웰빙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적인 제약이나 압박에 대한 변화의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참된 웰빙이 가능한 지 의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기존의 관습을 조금씩 탈피해보려는 노력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의왕국악협회 주최로 허브를 소재로 한 웰빙 국악 공연이 백운호숫가의 허브농장에서 있었다. 때마침 비가 내려서 공연주최측이나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허브농장의 분위기와 축축한 봄비가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장을 감싸는 빗소리가 마치 공연전체의 배경음악이 되어주는 듯 해서 백운호수 주변의 풍경과 허브향기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우선은 딱딱한 공연장을 벗어나서 자연을 벗 삼은 야외무대에서 공연이 이루어졌고, 출연자들의 복장도 늘 공연장에서 보던 한복이나 연주복을 탈피한 자연스러운 복장이어서, 권위나 격식을 따지지 않았던 것이 편안함을 주었다. 허브농장이라는 공간 역시 기존 연주회장보다 친근한 모습이어서, 덕분에 시민들이 한 발 더 다가간 효과적인 공연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경기문화재단이 이 공연에 지원금을 지원했던 것은 이 공연의 기획 자체가 웰빙을 테마로 한 것이었고, 허브농장과 연계해서 기존의 공연양식과는 차별성을 갖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공연을 관람하기 전에는 과연 음악공연에서 웰빙이 어떤 것일까 내내 궁금했다. 어찌 보면 음악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웰빙의 소재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음악공연은 웰빙콘서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국악과 웰빙의 관계가 새롭게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웰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호수가의 허브농장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것 외에는 프로그램이나 공연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평범한 편이었다.(물론 그것은 한정된 예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고 판단된다) 의왕시 국악협회 주최의 공연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실내악단 공연에 해당했고, 공연 내용은 ‘달하 노피곰(18현가야금)’과 같은 독주곡, ‘하늘꽃’과 같은 실내악곡, ‘꽃분네야’와 같은 국악가요, ‘고구려의 혼’과 같은 요란한 곡까지 다양했다.

전반적으로는 주변 환경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잔잔한 곡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고구려의 혼’(홍동기 작곡)이나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이준호 작곡)와 같은 곡들은 허브농장이나 웰빙과는 좀 무관해 보이는 레퍼토리였다.

‘고구려의 혼’은 슬기둥 콘서트에서 늘 연주되던 곡이면서 화려한 조명과 음향에 어울리는 곡이고,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곡으로 조금은 섬뜩한 노랫말을 가진 곡이기 때문에, 아무리 작품이 좋고 지향성과 내용성을 갖춘 곡이라 하더라도 공연장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배제하는 용기가 필요할 듯 했다.

촉촉한 봄비가 운치 있게 내리는 날, 초록의 내음이 가득한 호수가의 산수화 속에서 펼쳐진 잔잔한 실내악 연주는 도심의 찌든 때와 복잡한 마음을 씻어주는 편안함을 주었지만, 여전히 웰빙에 대한 화두는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만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야외무대로 나가서 편안한 실내악곡들을 연주하는 것이 웰빙이라고 한다면, 좀 더 화려한 공연장에서 좀 더 화려한 의상과 레퍼토리로 화려한 연주를 보여주는 것도 웰빙에 해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강렬한 사운드와 현란한 조명에 힘입어 강한 대중성을 얻으려는 최근의 실내악단 경향과는 물론 다른 차원의 것이긴 하지만, 공연의 지향은 인공을 탈피해 자연 속으로 향하는 듯하면서도 공연내용은 대중적 감성과 기능화성이라고 하는 인공의 요소들을 조합한 것이 조금은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기존 공연양식의 딱딱함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그리고 허브 향기 속에서 자연스러운 공연을 보여준 것이 신선했다. 다만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연이 잘 진행됐으나 홍보가 좀 부족했던 느낌이다.

공연장소가 다소 협소했던 탓에 많은 이들이 관람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울러 웰빙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 공연이었다는 점이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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