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미술작품 위작시비

미술계가 이중섭작품의 위작시비로 한참 시끄러웠다. 화가는 저 세상 사람이 된지 오래지만 아직도 그의 세속적 인기가 높아서 생긴 일이다. 그러나 높은 인기만큼 ‘작품의 예술성’이 뛰어난지는 좀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런 시비의 발단은 사실 어제 오늘 생긴 일이 아니다. 곰곰이 따져 보면 발단은 우리 사회가 자초한 면이 많다.

정치인의 비자금 조달이나 경제인의 자금 빼돌리기 등도 결국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있는대로 가진대로 살려 하지 않고, 도둑질을 해서라도 ‘돈의 위력, 권력의 위력’을 쟁취하려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야 행세하는 세상이다.

이중섭위작 시비의 끝은 법의 심판으로도 결판이 나기 어렵다. 또 그럴 성질의 일도 아니다. 많은 애호가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국민들에게 ‘미술분야는 그렇고 그렇다더라’는 어두운 불신을 남긴다는 점에서 후유증이 적지 않다. 이중섭이나 박수근처럼 불행한 일생때문에 오히려 신화적인 인기를 누리는 경우, 작품의 가격이나 가치가 실제보다 매우 높게 평가되어 거품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중섭의 담뱃갑 속 은박지를 이용한 손바닥만한 ‘은지드로잉’은 요즘 1점에 보통 1억원정도 호가되는데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바로 팔린다. 박수근의 유화작품은 나온다는 소문과 함께 호당(엽서 한장 크기) 1억원이상의 고가에 은밀하게 거래가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구상단계의 연필 드로잉마저도 상당한 값에 팔리는데, 아예 작품이 나오지 않거나 특정인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한다.

은지작품이나 연필화나 작품으로 보자면, 그저 본격적인 작품을 위한 초기 스케치나 작가의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습작 수준인데, 이런 것까지 본격적인 작품 취급을 받아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대가의 작품이라도 습작은 습작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좋은 드로잉작품의 수준이 일반회화 작품에 못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인 습작을 훨씬 뛰어 넘는다는 사실은 영국 조각계의 거장 헨리무어의 인물 양(羊) 드로잉연작이나 작품값이 높기로 정평이 나있는 쟈코메티의 드로잉에서 보면 분명히 확인된다. 이들은 드로잉이되 드로잉을 뛰어 넘는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보인다.

위작(僞作), 모작(摹作) 시비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중국 서예의 최고봉 왕희지의 저 유명한 난정서첩(蘭亭敍帖)도 현미경 조사 결과 후대의 모작으로 알려졌고, 중세유럽 대가들의 성화작품들을 베껴 더 유명해진 위작의 대가(?)도 있다.

세간에 떠들썩한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을 정밀 위작하는 대규모 조직이 국내외에 있다는 정보는 이미 비밀도 아니다. 박수근도 작품을 팔기 위한 개인전을 몇 번이나 열었지만 사주는 사람이 없어서, 60년대초 다수가 미국으로 흘러 나갔다가 최근 그의 작품값이 천정부지로 솟아 오르자 다시 고가에 역수입되고 있다.

이제 와서 한국의 대표화가, 민족화가로 박수근을 치켜 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가 생활에 쪼들려 실명에 이를 정도로 고생할 때 우리 사회는 외면했었다. 80년대중반까지만 해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그의 작품을 살 수 있었는데, 요즘 와서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문제는 공급이 막히고 수요는 급증하니 위작이 틈을 비집고 들어올 소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불행하게 일생을 마쳤던 이중섭이 행여 땅속에서 통곡하고 있지나 않을까.

/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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