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공연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애써 준비한 공연이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로 엉망진창이 된 경우를 보았다. 객석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그들을 야단치는 부모의 소리가 합쳐져서 만신창이가 된 공연도 기억난다.
‘서울국악실내악단의 경기 악가무(樂歌舞)’(6월 28일, 고양 덕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은 공연 시작 1시간전부터 로비는 아이들로 붐볐다. 나는 과거의 악몽(?)이 떠올라 불안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우스 매니저(공연장 안내원)는 어린이 관객을 맞이하는데 익숙했다. 아이들은 관객석 뒤편에 있는 방석을 갖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이른바 ‘키높이 방석’을 갖고 제 자리에 앉은 어린 관객들은 공연보기가 편했는지 대부분 진지하게 무대를 향했다.
공연 사회자 김광희의 능숙한 진행 솜씨도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공연을 아이들이 몰두하게 감상할 수 있는데 한 몫 했다. 그의 해설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했으며, 중간에 우리의 정가와 민요 등을 자연스럽게 불러가면서 진행했다.
서울국악실내악단은 20·30대 젊은 연주자로 구성돼 있다. 그들은 특히 경기도지역의 향토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국악실내악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도 고양 호미걸이소리를 바탕으로 해서 향토민요와 국악실내악이 만나게 하고 있었다. 민요의 편곡방식은 다소 밋밋하고 아쉬었다. 하지만, 고양 들소리의 가락의 흐름새와 노래마다의 개성이 잘 드러나서 관객들은 충분히 향토민요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지난해 타계한 김현규 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편 저편 좌우편 곰방님네” 이렇게 시작하는 고양 농사소리는 ‘옛 노래’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풋풋한 생명력이 전해지고, ‘요즘 노래’가 갖지 못하는 공동체적인 신명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김현규 선생의 생각에 잠겼지만, 그의 문하에서 수학한 최장규를 비롯한 소리꾼들이 이 소리를 잘 전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었다.
공연의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서 덕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제일 크게 환영을 받은 것 역시 이 고양 농사소리였다. 농사소리를 부르는 사람들은 먼저 ‘느린 소리’를 불렀고, 나중에는 ‘빠른 소리’를 불렀다. 무대에 2번 등장했는데, 처음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불렀고, 나중에는 실제 호미를 들고 나와서 일하면서 불렀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보였다. 처음의 정(靜)적인 느린 소리에는 조용히 숨죽이며 들었던 관객도, 나중의 동(動)적인 소리에는 박수를 치거나 어깨춤을 추면서 반응을 했다.
이제 고양은 농사짓는 고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즐겨 불려졌던 농사소리는, 역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자부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객석의 어느 한 켠에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꼬마 삼대(3代)가 덩실덩실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있는 각인되어 있다. 지금 우리 곁에 좋은 노래가 많다. 그 노래들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세대를 초월해서 모두가 하나 되어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역시 민요(民謠)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공연은 관객들의 반응이 대체로 좋았다지만, 앞으로 서울국악실내악단의 경기 악가무 작업은 보다 더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연의 여러 프로그램 마다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일지라도, 전체적으로 ‘경기 악가무’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부족하다. 보다 더 경기지방의 음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듯 하다. 그리고 고양 들노래와 같은 농사소리의 편곡도 다양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단순한 반주 기능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론 농사소리와 같은 일노래는 관현악기의 반주 없이도 그것 자체로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함으로 농사소리는 원형대로 들려주고, 이런 농사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변주형태의 실내악곡도 고려해 볼만 한다.
그리고 더욱더 관객층의 눈높이를 맞춘 공연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경기지역의 신도시에는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들이 공연의 주된 관람층이다. 이렇게 어린이 중심의 가족 공연을 국악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공연에선 어린이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키 높이 방석’은 존재했지만, 이 공연이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 관객을 염두에 둔 ‘눈 높이 공연’이라 하기엔 아직도 부족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윤 중 강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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