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법

다산 정약용은 1824년, 여름 더위를 이기는 8가지 이야기를 詩로 썼다.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타기,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두기, 연꽃 구경하기, 숲속 매미소리 듣기, 비오는 날 한시짓기, 달밤에 탁족하기다. ‘소서팔사(消暑八事)’에 나오는 다산의 피서법에 특별한 묘안은 없지만 더위로 흐트러지는 마음을 조용히 다스리는 선비의 정신이 있다. 옛 선비들은 피서방법으로 아예 책을 싸들고 유산(游山)을 떠나기도 했다. 산으로 놀러 가는 것은 탁족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고 선비들이 산에서도 엄격한 법도만 지키지는 않았을 터이다. 무더위엔 바짓가랑이를 내리고 ‘풍즐거풍(風櫛擧風)을 했다. 풍즐거풍이란 인적 드믄 산을 찾아 상투를 풀어 산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고 아랫도리를 드러내어 볕에 쬐는 것, 바람목욕이다.

한시에서 자주 보이는 시어 가운데 하나가 ‘고열(高熱)’이다. 요즘 말로 ‘무더위’로 옮길 수 있는데, 에어컨 ·선풍기가 없던 그 시절 무더위는 실로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독특한 피서법이 생겼다. 숙종 때의 학자 윤증은 책읽기(披書)로 더위를 식혔고, 우복 정경세는 날씨가 무더우면 그때마다 문을 걸어잠그고 깊은 방안에 틀어박혀 앉아 더위를 이겨냈다. 사람들이 이를 비웃자 우복은 “서늘함은 조용한 가운데 온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까?”라고 오히려 반문했다고 한다. 송규렴이라는 학자는 ‘상상 속의 피서’를 즐겼다. 시냇가에 정자를 짓고 정자 앞으로는 작은 연못을 만든다. 연못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어 놓고 온종일 정자 난간에 기대어 더위를 식힌다. 날씨는 더워도 머리 속만은 상쾌했을 게 분명하다.

민간에서는 목물이 최고다. 무더위가 한창인 6월 보름인 유두(7월20일)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했다. 동류수(東流水)에 머리를 감는 까닭은 해가 뜨는 동쪽이 양기(陽氣)가 왕성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두(流頭)란 말도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에서 나왔다. 등목도 빼놓을 수 없는 피서법이다. 어머니가 우물가에서 두레박 물로 등목을 시켜주면 무더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낮에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밤에도 기온이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삼복 중에 냉콩국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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