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헌장

“캐디(caddie)는 골퍼에게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유일한 우군(友軍)이다. 캐디는 플레이어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클럽이 1775년 제정한 ‘캐디헌장’의 일부다.

골프장의 경기보조원인 ‘캐디’는 16세기 영국에서 ‘포터’처럼 짐꾼이나 잔심부름을 하는 젊은 사내(cadet)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프로골프 경기가 활성화되고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캐디의 역할과 비중이 점점 커졌다. 여자골프의 1인자인 아니카 소렌스탐이 말했듯이 골퍼와 캐디의 호흡은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캐디들은 골프에 대한 실전경험이나 전문지식이 없으면 일하기 어려울 뿐더러 체력소모도 크다. 천차만별인 골퍼 수준에 맞춰 원만한 경기를 유도하는 인간관리법까지 터득해야 한다. 그래서 힘들지만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한국 골프 문화는 ‘수준 미달’이다. 골프가 ‘특권층의 스포츠’로 인식돼서인 지 캐디를 마치 하인 취급을 하는 부류들이 적지 않다. 막말과 희롱을 서슴지 않는다. 최근에 일어난 두 사례만 봐도 그렇다.

골프를 하던 현직 은행장이 캐디에게 욕설을 하며 왼쪽 대퇴부를 걷어찼다. 다른 팀의 경기자가 친 볼이 은행장 근처까지 날아 온 것을 사과하러 온 캐디는 발길질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골프를 신사의 스포츠로 여기는 다른 많은 골퍼와 캐디들의 얼굴에 먹칠을 한 꼴이다.

SBS- TV 드라마 ‘루루공주’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 방송에서 정준호의 계략에 말려 1일 캐디로 나선 김정은을 두고 골퍼들이 “어디서 저렇게 예쁘고 몸매 좋은 캐디를 구했느냐” “돈 좀 썼다. 쟤가 좀 비싸다”는 등의 대화를 나눴다. 여성을 성적으로 상품화하는 대사를 그냥 내보냈다.

요즘 몇몇 텔레비전들은 드라마나 생방송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때리질 않나, 남자연예인들이 공연도중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시키질 않나, 아무튼 정신이 나갔다.

SBS가 10일 ‘루루공주’ 방송 전 사과방송을 했지만 그렇다고 실추된 캐디의 이미지가 회복됐다고는 볼 수 없다. 미국처럼 골퍼가 라운딩 도중 규칙을 어기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가차없이 시정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

“캐디는 플레이어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캐디헌장’을 한국의 골퍼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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