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은 혹서기에 섭씨 26.5도를 넘으면 신병훈련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29.5도가 되면 탈수위험이 있어 행군을 자제토록 한다. 31도를 넘으면 지휘관 판단하에 옥외훈련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 논산 신병훈련소는 신병들의 행군은 주간 15㎞, 야간 30㎞ 거리로 나눠서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요즘 주로 중·고·대학생들이 참가하는 국토순례 행진이 군 훈련보다 혹독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얼마전 어느 재단이 주최했던 국토순례는 극기훈련으로 변질된 국토순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다. 참가했던 대학생 조 대장들은 “행군 중 탈진해 쇼크로 쓰러진 아이를 응급차에 태우는 순간부터 책임자는 폭언과 함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했다”며 “응급처치라면서 숨을 못 쉬는 아이의 배를 때리며 숨을 쉬라고 고함을 쳤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또 다른 조대장은 “하루 30㎞ 이상 도보로 행진하는 강행군을 하느라 반 이상의 아이들 신발 밑창이 다 떨어져 나갔는데 총대장은 ‘맨발로 걷게 하라’고 말했다”며 “행진 도중 비가 왔는데 비옷이 모자라 일부 아이들은 비를 다 맞아야 했다”고 밝혔다. 국토순례 행사는 성추행 의혹까지 제기돼 곤욕을 치렀다.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길을 계속해서 걷다 보니 쪄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장을 맡았던 대학생 누나를 비롯해 몇 명이 탈진했고 나도 너무 힘들어서 신기루같은 것이 보인 기분이었다”는 중학생의 말은 충격적이다. 말이 좋아 참가 경험담이지 생지옥에서 탈출한 느낌이었을 게 분명하다.
비를 맞고 장시간 걷는 것도 문제다. 탈진한 상태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 의식이 몽롱한 중학생들을 등산객이 구해준 사례도 많다. 이렇게 일부 국토순례단이나 동호회가 소위 ‘울트라 행군’이라고 해서 짧은 기간 내에 몇백㎞주파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하루 30~40㎞가 넘는 강행진을 하면 탈진 등 안전사고를 유발한다.
국토순례는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나라 사랑을 느끼는 걷기 운동이다. 극기훈련이나 병영 체험이 결코 아니다. 힘들어 쓰러지면 욕설을 퍼붓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토순례의 참뜻이 변질, 왜곡돼서는 안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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