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이 없는 얼굴은 이미 얼굴이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은, 아니 죽은 사람의 얼굴까지도 모든 사람의 얼굴은 표정을 지니고 있고 이 표정이 있음으로써 모든 사람의 얼굴은 매력이 있고 때로는 아름다울 수 있고 때로는 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인구는 50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50억이 넘는 모든 인간이 다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만이 아니라 수천년 전부터 허구한 인간이 살아왔는데 그 모든 인간이 다 다른 얼굴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수십억, 수백억의 인간은 서로 닮은 경우가 있을지라도 엄격히 따지고 관찰할 때 다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이 하느님 또는 누군가의 창조물이라면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즉 획일적이 아니고 모두가 다르다는 점에서 창조물 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수십억, 수백억의 다른 얼굴이 다 다른 표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얼굴의 표정이 가지는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는 흔히 얼굴하면 아름다운 얼굴, 추한 얼굴, 잘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을 연상한다. 그러나 잘생기고 못생긴 얼굴의 기준, 이를테면 미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체 그런 기준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주관적인 기준은 물론 있을 수 있지만 객관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중국의 서안을 다녀왔는데 현종의 별궁 마당에 있는 양귀비의 석상 앞에서 남녀노소의 반응은 달랐다.
젊은이들의 반응은 풍만할지는 몰라도 둥근코 뚱뚱한 얼굴과 몸매에 ‘절세의 미인’ ‘경국의 미인’이라는 형용이 맞지않다고 수근거렸고, 어떤 촌로는 과연 절세의 미인이라고 황홀한 표정이었다.
결국 양귀비를 또는 클레오파트라를 절세의 미인으로 만든 것은 황제 현종과 라시자와 안토니오가 매료되었기 때문이고, 현종이 양귀비에게 사로잡힌 것은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얼굴을 통로로한 양귀비의 내면세계의 발로라 할 수 있는 표정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은 아름답다. 나이가 들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그 얼굴은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고 반대로 이그러지고 추해질 수 있다. 그래서 얼굴에는 그 사람의 역사가 새겨진다고도 말했다.
눈이 크다든가 적다든가, 코가 높다든가 얕다든가, 입이 크다든가 적다든가, 모양이 어떻다든가 하는 외형적 기준에 의해서 얼굴의 품위와 아름다움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흘러간 시간의 역사와 내면 세계의 발로인 표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정은 원래의 저마다 다른 외형적 얼굴에 무한한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 무한한 다양성을 우리는 수용하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여야 한다.
/김정옥
얼굴박물관 관장·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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