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와 시인의 인생살이는 37세라는 나이에 비해 고통과 질곡으로 점철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서울 서대문구 굴레방 다리 밑 거적때기 움막에서 해녀 출신인 한 여인의 막내로 태어났다. 언니는 식모살이 가고 오빠는 양자로 갔다. 어머니는 새 아버지를 세번 얻었는데 그 중 두 명이 죽었다. “나는 써먹을 데가 없어서 어머니가 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상복을 입고 상 치르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기와 시인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리어카에 텐트를 싣고 다닌 떠돌이 삶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 어렸을 때 봉제인형·가발공장 등에서 일했고 식모살이와 중국집 서빙 등을 전전했다. 20대 초반엔 포장마차를 거쳐 술 파는 카페와 1급 유흥업소(룸 살롱) 마담직도 경험했다.
카페에서 책 보며 시를 쓰기 시작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24세에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포장마차에서 꽁치 굽고 곰장어 무치면서 새벽 4시까지 시를 썼다”는 그는 19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지하역’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는데 방송통신대 국문과를 거쳐 중앙대학원을 졸업했다. 못 배운 한을 풀었다.
2001년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를 냈는데 “고통스런 삶의 기억을 치열한 언어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한 이기와 시인이 농협에서 집을 담보로 800만원을 빌려 150만원짜리 카메라 텐디(10-D)캐논을 사들고 1년 6개월동안 詩를 따라 전국을 다녔다. 신경림 시인의 ‘산동네에 오는 눈’을 따라 울며 헤맨 서울 홍은동 산 1번지, 그리고 황청포구, 내장산, 마곡사, 제주, 소록도, 구절리 등을 돌아 다녔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터득한 또 다른 삶을 ‘詩가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붙여 산문집을 냈다. 물론 사진을 직접 찍었다.
그의 산문엔 익살과 풍자가 넘치는가 하면 깊은 사유(思惟)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잠언(箴言)이 담겨 있다. 구룡사 등산로를 맨발로 사풋사풋 걷는 여자 등산객으로부터 그는 ‘아프게 걷지 말고 춤추듯 생의 길을 가라’는 법을 배웠다.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 박수를 받기보다는 자연과 친해져 그들로부터 칭찬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전국 곳곳을 돌아 다니며 새삼 깨닫고 한 말이다. 과거를 굳이 숨기지도 않고 밝히지도 않으며 지금 김포의 한 농촌에서 살고 있다./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