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단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옆에 있는 ‘원구단(圓丘壇)’은 청나라 천자에게 빼앗긴 천제(天祭)를 433년 만에 회복하여 고종이 1897년 10월11일 대한제국의 독립선언과 함께 황제 즉위를 하늘에 알리는 고제(告祭)를 올렸던 곳이다. 제를 올리는 단(壇)이 원형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통상 원구단으로 불려왔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성종 2년(서기 983년) 정월 황천 상제인 삼신과 흑제·적제·청제·백제·황제, 즉 오방위의 신위를 모시고 왕이 친히 ‘원구제’를 올렸다. 또 ‘조선왕조실록’엔 태조 3년(1394년)과 세종 원년(1419년)에 원구제를 올렸고, 세조 3년(1457년)부터 매년 ‘원구제’를 올렸다. 그러나 “천자가 아닌 조선 왕이 하늘에 제를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중국(청나라)의 강압에 의해 1464년 마지막 원구제를 봉행했다. 이후 고종에 이르러 천제를 복원하여 명당·명소·길지로 알려진 소공동에 원구단을 세웠으나 1913년 일제와 친일파들이 또 “조선의 왕이 천제를 지내는 것은 하늘에 대한 불충이므로 일본 천황이 지내야 한다”며 ‘황궁우(皇穹宇)’만 남겨 놓고 원구단을 철거하여 ‘원구단 천제’가 사라졌다. 일제는 원구단 자리에 지금의 조선호텔 전신인 ‘철도호텔’을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호텔이 신성한 제사터를 깔고 앉아 있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9번지 뉴파고다빌딩 211호(전화 02-747-9611)에 사무실을 둔 ‘원구단천제복원위원회’는 원구단 복원을 추진하는 단체다. ‘황궁우’를 보살피고 있는 원구단복원위의 한 회원을 만났을 때 “아마 우리 국민 누구라도 이 기막힌 사실을 알고나서도 ‘조선호텔’이 이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분도 없을 것이다. 또한 본의 아니게 이 자리를 소유하게 된 삼성재단측도 국가의 자존과 천손민족(天孫民族)의 명예를 위해서도 아마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것으로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원구단 3동(棟) 지붕은 天·地·人 삼합 일체의 천제의식을 우주 빛의 상징인 황금으로 장식했다. 그 찬란한 빛이 온 천하를 밝혀 전 세계인이 우러러 경배하는 원구단은 인류 최고의 장엄한 제천성지”라고 한다. 조선호텔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도 복원될 지 미지수인 ‘고독한 운동’을 하고 있는 원구단천제복원봉헌회의 염원이 언제쯤 이루어질까. 이런 사람들이 있어 역사는 흐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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