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계절

뉴욕타임스가 근래 흥미있는 보도를 했다. 중국의 장쩌민(江澤民)이 국가주석을 후진타오(胡錦濤)에게 내준 데 이어 마지막으로 하나 지녔던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에서까지 마저 물러나게 됐던 비화가 소개됐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난 해 6월경의 일이다. 쩡칭홍(曾慶紅)국가 부주석은 장쩌민에게 9월 당대회에서 중앙군사위 주석직의 자진 사임을 밝히도록 권고했다. 당내 추종 세력이 거부할 것으로 계산된 일종의 쇼 연출 제의였다. 이럼으로써 군통수권 지위를 공고히 거듭 굳히고, 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쩌민은 흔쾌히 따랐다. 무엇보다 쩡칭홍은 후진타오의 견제를 위해 자신이 국가 부주석으로 키운 사람이어서 심복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빗나갔다. 후진타오는 장쩌민의 사임안을 당(정치국)에 넘기지 않고 자신의 기반 세력이 깊은 군(고위층)에 넘겼다. 군에서 당으로 사임안이 넘어갈 즈음의 공론은 이미 사임이 기정사실화되어 장쩌민은 후진타오에게 할 수 없이 군사위 주석까지 자진해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장쩌민은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것이 정계를 완전히 은퇴하게 된 배경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장쩌민이 믿었던 쩡칭홍의 배신에 있다. 뉴욕타임스는 장쩌민의 심복이었던 쩡칭홍이 후진타오의 심복으로 돌아서 그같은 간계를 부린 것으로 분석했다.

정치인을 두고 오인환 전 공보처장관이 한 말이 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 출신의 오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5년의 재임기간을 같이한 최장수 장관이다. 그는 “금방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했던 상대 정치인이 나타나면, 우리가 소원한 사이가 아닌데…하며 너털웃음으로 가면극을 벌이는 것을 보면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군부 세력으로 명운을 함께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전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에 3년이나 유배시켰다. 비록 불가피한 조치이긴 했으나 당자는 생각이 다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세동) (안기)부장을 후계자로 앉혔을 것인 데’하고 당시 부부가 후회했다는 항설이 있었다. 정치인 세계가 배신의 계절인 것은 이즈음도 다를 바가 없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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