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시 학암동 남한산성 서문(청량산) 정상 부근에서 일제강점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쇠말뚝이 50여개나 발견돼 시청 공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제거작업(본보 25일자 4면 보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쇠말뚝들이 ‘일제가 우리 민족혼과 정기를 말살하려고 한 짓이다’, ‘아니다’ 등 진위(眞僞)여부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전국에서 일제 쇠말뚝 제거작업을 벌여온 사단법인 한배달 산하 민족정기선양위원회는 “부식 정도 등을 좀 더 따져 봐야겠지만 일제 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또 “청량산은 풍수지리적으로 학(鶴)산이고 쇠말뚝이 박힌 지점은 날개에 해당된다”며 “‘일제 쇠말뚝이 있다’는 구전과 쇠말뚝의 상태 및 발견지점 등으로 볼 때 일제가 박은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정확한 내용을 알아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발견된 고리형 쇠말뚝 대부분은 2.5~3m 간격으로 암벽 등에 박혀 있는데다 등산로 주변과 인접, 전문 산악인들이 산악훈련용으로 사용하다 방치했거나 한동안 인근 군부대가 산악훈련코스로 사용하다 방치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세민 하남시 문화복지사업소 박물관팀장(문학박사)은 “전국적으로 쇠말뚝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으나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없다”며 “최근 공개한 쇠말뚝도 언제 박힌 것인지, 그 쓰임새가 무엇인지 등은 정확히 조사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역사학자 이이화 박사는 지난 99년 펴낸 ‘역사풍속기행’에서 “쇠말뚝과 관련된 일제의 문헌자료가 전무하다”며 “쇠말뚝은 일제의 측량기구”라고 규정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무엇보다 철저한 증거주의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 증거도 없이, 혹은 증거에 대한 충분한 조사도 없이 덮어 놓고 자기 주장만 내세워서야 되겠는가. 이 문제를 지켜 보며 어느 때보다 역사주의 정신을 되새겨 볼 때라는 생각이 든다.
/강영호기자 kangyh@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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