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때때로 바다처럼 나를 사로잡는다! / 나는 출범한다 / 창백한 별을 향해, 자욱한 안개 밑으로 / 때로는 끝없는 창공 속으로 / 돛대처럼 부푼 가슴 / 앞으로 내밀고 / 밤에 묻혀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 나는 탄다 / 나는 느낀다, 신음하는 배의 / 온갖 정열이 진동함을 / 순풍과 폭우가 그리고 그 진동이 / 나를 흔든다 / 광막한 바다 위에서 / 음악은 때로는 고요한 바다 / 내 절망의 거대한 거울.”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1821 ~ 1867)의 詩 ‘음악’이다. ‘음악은 때로는 고요한 바다. 내 절망의 거대한 거울’이라는 절창(絶唱)과 ‘여행의 목적은 떠나는 데 있다’는 절묘한 말을 남긴 보들레르는 ’백지의 공포’란 말을 통해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을 고백한 시인이다. ‘백지’는 원고지다.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이론가이기도 한 보들레르가 1857년, 첫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을 출판하였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과 시 6편 삭제라는 판결을 받았다. 뇌연화증(腦軟化症)의 징후와 실어증으로 46세의 나이로 삶을 마쳤다. 죽은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의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 됐는데 특히 보들레르의 서정시는 다음 세대인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발레리는 “그보다 위대하고 재능이 풍부한 시인들은 있을 지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인은 없다”라고 절찬하였다. 일본의 귀재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인생은 단 한 줄의 보들레르 시보다 못하다”며 35세에 자살했을 정도다. 보들레르는 말년에 실어증으로 말을 하지 못했지만 “예술은 인간의 천성이며 천성은 신(神) 예술”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바닷가에 오래 서서 보들레르의 ‘음악’을 들으면 “고통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점에서 위대하며, 가치 있는 고통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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