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원, 꼴통형사 변신 “건든놈 나와!” ‘미스터 소크라테스’
이 친구 참 인간 말종이다.
지하철 안에서 담배 피우기는 기본, 노약자석에 누워 있다 호통치는 할아버지를 무시하기는 예사며 교도소의 아버지에게 면회를 가서는 용돈이나 좀 달란다.
장유유서(長幼有序)에 부자유친(父子有親)도 없으니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고 있을 리 없다.
실수로 죄를 저지른 친구를 경찰에 신고해 버리는데도 죄책감이란 도무지 찾아 보기 힘들다.
신작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첫번째 미덕은 주인공인 ‘꼴통’ 형사 구동혁(김래원)의 캐릭터에 있다.
진지함의 반대말이고 안티 모범생 캐릭터의 전형이며 예전에는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의 인물 ‘삵’에서 최근 ‘공공의 적’의 강철중 같은 인물들과 선이 닿는 그의 매력은 막돼 먹게 행동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옳은 일을 하는 바람직함에 있다.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은 폭력 조직의 막내인 이 악질이 조직의 필요에 의해 경찰로 거듭 난다는 구성. 일단 마음을 잡은 그가 조직의 음모에 동조할 리는 없고 말단 형사인 그는 특유의 ‘막 나가는’ 방식으로 조직과 전쟁을 벌인다.
여러가지 아쉬운 점에도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최근 잇따라 선보인 몇몇 코미디 장르 영화중 줄거리의 흡입력에서나 에피소드의 풍부함에서나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듯하다.
형사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주인공 동혁의 성격 변화나 사육당하는 ‘개’에서 복수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심리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면은 없지 않다.
악하기만 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악당의 모습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넘치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으면서도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나 액션이나 코미디 장면에서의 깔끔한 편집, 동혁의 캐릭터를 연기한 김래원의 매력 등이 잘 어울리며 통쾌함과 웃음이란 관객의 쾌감을 효과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여기에 강신일이나 이종혁, 윤태영, 오광록, 박철민 등 탄탄한 연기 혹은 개성 있는 캐릭터를 갖춘 배우들의 모습도 즐길 거리. TV 코미디와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던 최진원 감독이 ‘패밀리’ 이후 두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다음달 10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9분.
■가을을 울리는 ‘사랑해, 말순씨’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와 ‘인어공주’ 등을 통해 주변을 관찰하는 섬세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박흥식 감독은 ‘사랑해 말순씨’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솜씨를 과시했다. 비록 앞선 두 작품보다 몸집과 화제성에선 한참 떨어지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영화는 기대 이상의 흡족함을 전해준다.
중학교 1학년 소년 광호는 엄마 말순을 부끄러워한다. ‘박정희 대통령 유고’란 신문 제목을 보고 “유고가 뭐냐”고 묻자 “6×5는 30이지”라고 중얼거리고 화장을 지우면 눈썹이 없는 엄마는 광호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런 광호가 연모하는 대상은 바로 옆방에 세든 예쁜 간호사 누나. 사춘기로 접어든 광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에 눈을 뜨고 간호사 누나를 대상으로 몽정을 한다.
그러던중 ‘행운의 편지’가 배달된다. 일정량의 답장을 쓰지 않으면 불행이 닥친다는 행운의 편지. 광호는 자신을 괴롭히는 바보 소년 재명이와 엄마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답장을 쓴다.
평범한 내용이나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부터 전두환 대통령 취임까지 한국사의 최대 격동기를 배경으로 삼아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승화시킨다. 별다른 사건 없이도 처음 1시간이 흘러 갈 수 있는 건 바로 그 시대를 섬세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힘을 주지도 않았다. 보여줄 것과, 말할 건 다 보야 주거나 말하면서도 시치미 뚝 떼고 관조하듯 한발 뒤로 물러 났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무심한 대사와 에피소드 속에 계엄, 광주사태, 사우디 건설붐, 가난, 폭압적 교육 등 시대를 관통하는 무시무시한 키워드를 녹여 냈다. 대단한 생략법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기법은 장면 장면의 여운을 길게 하는 효과를 낸다. 특히 아버지의 부재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 놓았다. 여기에 휴머니즘도 진하게 깔려 있다.
정신지체 장애인과 가난한 반항아에 대한 편견, 엄마에 대한 애증의 교차가 얼토당토 않은 ‘행운의 편지’란 시대적 상징과 어우러져 가슴을 따끔따끔 꼬집는다. 여기에 누구나의 아킬레스건인 엄마에 대한 사무치는 회환과 그리움이 정점을 찍으니 관객은 막판 옴짝달싹할 수밖에 없다. 외관상으로는 한 소년의 특별할 것 없는 통과의례기이지만 영화는 아픈 시대를 그 안에 투영하고 엄마에 대한 사랑을 녹여 내 한편의 수작으로 탄생한다. 다음달 3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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