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산 사람에게

‘생명의 빚 남기고, 천상의 빛으로’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신문기사가 눈길을 끈다. 충북의 어느 두메산골 교회에서 봉직해오던 전생수 목사(52)가 철야기도중 뇌중풍으로 쓰러져 유언에 따라 각막·신장·간 등 장기를 기증해 7명에게 새 삶을 살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무소유의 달관속에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왔다고 전했다. 지난 9월11일 새벽에 입적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법구를 동국대 일산병원, 역시 지난 9월20일 선종한 천주교 수원교구 한종훈 신부가 시신을 가톨릭의과대학에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한데 이어 이번엔 개신교 목회자가 기증했다.

공교롭게도 세 분의 종교인들은 유언을 통해 화장하도록 하여 묘소도 남기지 않도록 했다. 법장 스님, 한종훈 신부 또한 안빈낙도(安貧樂道)로 깨끗한 삶을 살았다. 생전에 온갖 협잡으로 부귀공명을 탐하고 사후에는 비좁은 국토에 호화분묘를 예정해두기가 안달인 속인들에게 숙연한 일깨움을 준다.

예전에는 행려사망자를 많이 의학 연구용으로 썼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사망자가 거의 없다시피 되어 의과대학마다 애로를 겪는 것이 의학 연구용 시신이다. 해동성의(海東聖醫)로 숭앙받는 허준(許浚)은 그의 스승이 운명하면서 당부한 유언을 받들어 한의로서는 처음으로 스승의 시신을 해부했다.

시신 기증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이래서 더러는 기증 등록을 해 놓고도 이행치 않은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행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그래도 의과대학도 많고 연구수요도 늘어 연구용 시신이 미흡한 실정이다. 영국·프랑스·핀란드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장기 및 시신 기증자 이름으로 나무를 심어 가꾼다. 캐나다 같은데선 총리가 해마다 기증자들을 초청해 자리를 마련한다. 종교지도자 분들이야 이런 것에 초월하겠지만, 일반인 기증자들에게는 국내에서도 이같은 행사가 있었으면 한다.

장기 및 시신 기증은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는 또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죽어서 산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이도 의미있는 사(死)의 활력이라고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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