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가운데 공산주의 전력시비로 구설수에 올랐던 대통령이 두 분 있다.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여순반란사건 연루 혐의로 진급이 늦어지기도 했다.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했던 국군 제14연대가 공산주의를 추종한 장교들의 주도로 여수와 순천에서 무장 폭동을 일으켰던 것이 여순반란사건이다. 반란은 1주일만에 다른 부대의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진압되면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 당시 박정희는 위관급 장교로 육군본부에 근무했지만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아 수차 조사를 받는 등 꽤나 고생했다.
두번 째는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때다. 박정희와 맞붙은 윤보선이 이른바 ‘사상논쟁’을 제기했다. 그 무렵 거물 남파 간첩인 황태영이 박정희 형의 친구가 되는 연줄로 박정희와 접선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사상논쟁’은 5대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로 떠올라 박정희는 유세마다 윤보선의 주장을 반박하느라고 햇볕에 까맣게 탔을만큼 애먹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도연맹’의 전력이 멍에가 되어 고생했던 분이다. 해방직후 지방에서 좌익 성향을 갖다가 전향한 사람들로 구성된 관제단체가 이 단체다. 전 국회의원 이철승씨 같은 사람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도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다.
그렇지만 박정희나 김대중이나 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왼쪽으로 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체성을 지켰다. 그러고 보니 최대 정적이었던 두 분이 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았던 공통점이 있는 것은 참으로 묘한 기연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엊그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문병을 맞는 자리에서 얘기 끝에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공산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의 독재는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그의 경제개발은 인정하는 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강한 좌파 색채를 드러냈을 뿐 본인의 공산주의 전력은 없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과 비하면 판이하다.박정희는 완전히 부정의 대상이다. 독재자로만 본다. 무엇보다 맥아더 동상 철거의 시비를 두고 “역사로 보면 된다”는 등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딱부러진 말을 못하는 속내가 뭣인 지 새삼 궁금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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