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출

국회가 지난 23일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켜 내년 3~4월이면 미국산과 중국산, 태국의 안남미(安南米), 인도와 파키스탄의 향미(香米) 등 수입쌀이 슈퍼마켓, 할인점 등에 진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수입쌀은 중국산과 미국산이 대종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과 미국산은 우리의 주식 쌀과 같아 국내산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산은 일반 식당이나 대형 급식업체 등에서 소비될 것으로 보인다. 고품질 쌀로 알려진 미국 칼로스쌀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될 가능성이 크다.

태국 안남미는 밥을 지으면 푸슬푸슬한 인디카 장립종 쌀로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최근 들어 동남아요리 전문점 등에서 인기가 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향미도 일부 애호가를 중심으로 소비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외국쌀이 들어오는 것은 불가피해졌는데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 일본과 대만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농민단체의 격렬한 반대로 쌀 시장 개방은 엄두도 못 냈다. 결국 일본은 2000년까지 6년간 쌀 시장 개방을 유예받았고, 대만도 2002년 말까지 시장 개방을 미뤘다. 그러나 일본은 늘어나는 정부의 쌀 재고와 재정부담 때문에 1999년 자진하여 관세화를 선택했다. 수입쌀에 관세를 물리는 대신 시장을 연 것이다.

1999년 4월부터 수입쌀에 ㎏당 315.7엔의 종량세를 관세로 부과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농촌 구조개선 사업에 집중 투자했다. 농민들도 살아남기 위해 고급 품종 개발에 전력 투구했다. 그 결과 일본 농민들은 세계 최고급 쌀 품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니가타현에서 생산하는 고시히카리 쌀은 중국·대만·싱가포르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의 서울 강남 부유층을 겨냥한 수출도 계획 중이다. 최고급 쌀로 꼽히는 니가타 오우누마 쌀은 60㎏짜리가 100만원에 육박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이번 쌀협상 비준 동의안 통과는 쌀 시장의 완전 개방(관세화)을 앞으로 10년간 늦출 수 있는 공식적인 절차를 마친 것이다. 우리나라 쌀이 고품질인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일본처럼 국내산 쌀을 수출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농촌·농민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부터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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