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헌법재판소’ 비탈에 서다

헌법재판소는 태생부터가 정치적 산물이긴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으로 이뤄진 9차 개헌의 현행 헌법에 의해 부활됐다. 이전에 있던 헌법재판소가 없어진 것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5차 개헌을 하면서 사라졌다. 그러니까 그간의 26년동안은 대법원이 위헌 심사 기능을 행사했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헌법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됐던 것이 헌법재판소를 새로 두게 된 배경이다.

1988년 8월5일 법률 4017호로 공포된 헌법재판소법은 관장사항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①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 ②탄핵의 심판 ③정당의 해산 심판 ④국가기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⑤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등이다.

당초엔 헌법재판소는 특별 사람들의 특별 사건만 다루는 곳으로 여겼던 게 지금은 대중화 됐다. 법원 못지않게 대중화되어 걸핏하면 헌법재판소 관장사항이 아닌 일을 두고도 헌법재판소 제소를 들먹이곤 한다. 그러나 어떻든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폭주하리만큼 대중화된 높은 인식이 나쁜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출범 17년만에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시대적 갈등은 헌법재판소 내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는 각각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다. 보수는 안정적이지만 답답하다. 진보는 개혁적이지만 맹랑하다.

재판의 사안을 다수의 의견으로 판결하는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개인의 성향에 따라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그 성향이 얼마나 객관적이냐는 것은 영원한 숙제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은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고 했다.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 정권들어 헌법재판소는 전례없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굵직한 사건을 세번이나 다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결정, 행정도시특별법 헌법소원 각하 등은 사안의 정치성이 매우 짙다. 그러나 사안이 아무리 정치적이어도 심판은 법리적이어야 한다. 쟁점의 판단이 법리적이어야하고, 사실면이나 정황면을 살피는 것도 법리를 일탈해서는 법률적 심판이 아닌 정치적 심판의 의혹을 떨치지 못한다.

이런 법리의 해석 역시 재판관들의 관점에 따라 각기 판단이 다를 수는 있다. 예를 든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위헌 결정 당시 김영일 전 재판관은 위헌의 결론은 다른 7명의 재판관과 같았으나 위헌 사유는 달랐다. 관습헌법 위반의 다수 의견이 아닌 별개 의견으로 중요정책의 국민투표(헌법72조)를 거치지 않은 게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행정수도특별법 헌법소원 각하의 다수 의견을 낸 사람 중 하나인 조대현 재판관은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2명의 다른 재판관과 함께 냈다. 조대현 재판관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변론을 맡았고, 신행정수도특별법 헌법소원 사건에서 정부측을 대리한 법무법인에 몸담다가 지난 3월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됐다.

재판관이 되는 덴 대통령 임명·대법원장 지명·국회(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등) 선출 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유의할 것이 있다. 법리해석의 객관화는 재판에 담보된 재판관의 주관적 양심의 그릇이라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재판관이 된 경로가 뭣이든 본연의 소임에 충실하는 것이 헌법기관으로서 요구받는 사명이다. 국가사회 일각에서 적잖게 걱정들을 한다. 내년 8~9월에 5명의 재판관이 퇴임하게 된다. 이 중엔 행정도시특별법에 소수의 위헌 의견을 냈던 권성·김효종 재판관도 포함된다. 진보 성향의 재판관들로 물갈이 할 것을 우려하지만 그래도 헌법기관이다. 헌법재판소가 비탈에 서있는 것은 사실이나 정치권의 용병이 될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다만 이번 행정수도특별법 헌법소원 각하의 이유를 두고 해야할 말은 있다. 헌법이 정한 국민투표 부의를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판단한 것이 과연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합치되느냐는 의문이다. 헌법 조문은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해 협의로 보면 대통령의 임의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으로 보아서는 광의로 해석해야 한다는 판단이 앞선다. 이런데도 국민은 국민투표를 요구할 권리가 없으므로 투표권 침해가 아니라고 했다. 국민투표권을 대통령의 배급에 의한 것으로 본 각하 이유가 너무 고약하다. 대통령의 입장에서보단, 국민의 입장에서 살피는 것이 헌법정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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