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왕의 남자’.‘파랑주의보’.‘킹콩’

■‘왕의 남자’

김태웅의 희곡 ‘이(爾)’ 원작

목숨을 건 宮中 광대놀음 화려한 비극…

민초들을 웃기고 울렸던 광대들이 자유와 사랑 등을 향해 신명나는 한판 놀이마당을 펼친다. 그러나 그 놀음판은 처절하게 아름다운 비극을 향한다. 기대 이상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원작의 탄탄함이 튼실한 대들보 역할을 했다.

이준익 감독은 특유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화려한 비극으로 완성했으며 배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를 완성했다. 그들의 연기는 마치 광대처럼 관객을 키득키득 웃기고 가슴 시리게 울린다.

◇억압하는 자 억압받는 자

폭군 연산의 사랑을 받은 광대의 삶 역시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공공연히 드러난 영화의 결말이다. 연산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텍스트가 돼 있다.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됐던 연산에게서 또 뽑아 낸 이야기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관건이었을 것.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자유와 사랑을 갖지 못했던 왕(정진영 분)과 미천한 신분이지만 자유와 사랑을 다 가졌던 광대 장생(감우성)의 삶은 극도로 대비된다. 왕은 권력으로 만인을 억압하지만 스스로는 받지 못한 모성애로 인해 억압받는다. 한판 크게 놀아 보고 싶은 장생과 그를 형처럼, 연인처럼 따르는 공길(이준기)은 궁에 들어 오기 전에는 굶주렸으나 자유로웠다.

장생이 남성성을 갖춘 인물이라면 몸까지 내줘야 했던 공길은 여성성으로 완성되는 인물이다. 궁 밖 세상으로 나가려는 장생과 왕의 상처를 어루만지게 되는 공길 사이의 갈등이 벌어지며 긴장이 고조된다.

◇신명나는 놀음판배우도, 감독도, 지켜보는 이들도 한판 신나게 놀았다

‘황산벌’을 통해 우리말(사투리)의 유희를 선보였던 이준익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 내면의 단층을 끄집어낸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인간애였을 것.

배우들은 감독이 요구한 것 이상을 해낸 것으로 보인다. 장생 역의 감우성은 결코 천민답지 않은 자유에의 의지를 지닌 광대를 온몸으로 체화시켰다. 거의 직접 해낸 줄타기는 영화에 대한 열의를 느끼게 한다.

비록 신인이지만 이준기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연기를 펼쳤다. 장녹수도 질투할만큼 여성성을 갖췄으나 처한 상황에 따라 대사 톤도 몸짓도 다르다. 수위를 조절하기 힘든 연기 톤을 치열한 고민으로 맞춰 갔을 것이란 짐작이 자연스럽게 들만큼.

정진영의 연기력이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광기에 빠져 부릅 뜬 눈과 아이처럼 어머니를 갈구하는 상처받은 눈은 확실한 대비를 이룬다. 비록 자주 등장하진 않지만 자신 있는 연기로 장녹수 역을 해낸 강성연 역시 칭찬할만하다. 모든 것을 잃고 최후를 짐작하는 연산을 ‘미친 놈’이란 한마디로 받아 들이며 최후의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맞겠다는 손 동작은 장녹수를 요부가 아닌, 그저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로 기억하게 한다.

◇연극 원작 성공사례 이어가기- ‘살인의 추억’과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때 떠나라’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징후 중 하나는 완성도 높은 연극 작품을 영화화했으며 지금까지 흥행과 작품성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

‘왕의 남자’ 역시 김태웅 작 ‘이(爾)’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비록 원작의 치밀한 구성과 실험적인 상상력에 빚을 졌지만 영화만이 가능한 또 다른 상상력과 풍성한 영상 등으로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한다.

‘왕의 남자’는 어느 하나 쉽게 놓칠 장면이 없다는 점 또한 미덕으로 갖는다.

초반 봉사놀이 장면은 실제 장생이 왕의 벌을 받아 봉사가 돼 하늘 높이 떠오르는 마지막 대목과 연결되고 유희같았던 글씨체는 생과 사를 갈라 놓을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 등 촘촘한 얼개로 맞물려 돌아간다.

오는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햇살같은 첫사랑 ‘파랑주의보’

탄탄한 줄거리에 우리나라 최고 스타가 출연한다면 흥행은 떼놓은 당상이 아닐까. 한국에서 리메이크되는 대부분의 외국 영화는 아마도 이런 기획 의도에서 출발할 것이다.

지난 12일 시사회를 통해 첫선을 보인 영화 ‘파랑주의보’(감독 전윤수 제작㈜아이필름)도 이런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일본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원작. 지난해 개봉됐던 ‘세상의 중심에서…’는 ‘실락원’이 갖고 있던 일본 멜로 영화 흥행기록을 7년만에 갈아치우며 1천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첫사랑이란 소재에 불치병과 죽음이란 최루성 양념을 더했다. 두 영화 얼개는 같지만 ‘파랑주의보’가 더 신파조다. ‘파랑주의보’는 ‘순수’란 콘셉트를 덧대 ‘첫사랑’의 순수성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현실성이라는 면에선 다소 비껴가는 느낌도 있다.

수호(차태현 분)가 첫사랑 수은(송혜교 분)을 10년 넘게 잊지 못하고 방황한다든지, 수호의 할아버지(이순재 분)와 첫사랑의 상대가 평생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다든지 하는 대목이 그렇다.

‘세상의 중심에서…’에선 결혼을 앞둔 사쿠(오사와 다카오 분)가 첫사랑 아키(나가사와 마사미 분)를 떠올리고 사쿠 아저씨의 첫사랑은 단지 평생 가슴 속에 간직한 짝사랑일 뿐이다.

이 영화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송혜교의 영화 데뷔작이란 점이다. 그동안 끊임 없이 영화계로부터 러브 콜을 받아 왔던 송혜교가 선택한 멜로 영화이기에 더욱 눈길이 간다.

대명고교 최고 퀸카 수은은 공부도 그럭저럭, 외모도 그럭저럭인 수호를 짝사랑한다. 언제나 수호를 자신의 레이더망 안에 두었던 수은은 어느날 물에 빠진 수호를 구해주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드러낸다. 수은을 찜했다는 쌈짱 유도부장의 방해도 이들의 사랑에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친구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둘만이 떠나게 된 섬 여행은 이들에게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순간 수은이 갑작스럽게 쓰러지면서 슬픈 결말로 치닫는다. 골수암으로 판명된 수은은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서러운 감정 때문에 괴로워한다. 수은의 곁에서 간호하는 수호는 이런 현실이 힘겹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지금까지 너와 함께 살아왔듯 앞으로도 너와 함께 살아갈거야”란 수호의 약속은 수은에게 부담이면서도 마음 놓이는 진실한 사랑으로 전해진다.

영화는 투병중에도 애틋하고 그리운 이들의 사랑을 작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영화에서 만나는 가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나 지난 90년 강변가요제 대상곡인 권성연의 ‘한여름 밤의 꿈’은 30대 후반 관객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송혜교의 노래를 듣는 것은 팁.

송혜교는 자신을 톱스타로 올려준 드라마 ‘가을동화’ 이미지와 비슷한 작품을 택했다. ‘가을동화’보다 더 어린 배역이지만 풍성하고 깊이있는 감정을 연기했다. 다만 송혜교의 숨겨진 또 다른 매력을 끄집어 내는 것에 인색한 채 자기 복제를 요구한 점은 내내 마음에 걸린다. 오는 22일 개봉.

■킹콩은 로맨티스트?

기대감이 만족감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역시”란 말을 되뇌게 된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전세계를 사로 잡은 뒤 아카데미상까지 거머쥔 뉴질랜드 출신 피터 잭슨 감독이 리메이크한 영화 ‘킹콩’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우며 “역시”를 외치기에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할만하다.

시사회를 통해 실체를 드러낸 ‘킹콩’은 원작의 스토리 라인에 충실하면서도 “‘반지의 제왕’ 3부작에 사용된 특수효과보다 더 많은 특수효과가 사용됐다”는 배급사의 자랑을 증명이라도 하듯 화려한 특수효과의 잔치였다.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완성한 뒤 “영화를 찍으면서 깨달은 건 영화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만큼 환상적이어야 하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만큼 현실적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킹콩’은 그의 이런 말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은듯 환상적이며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 괴물 킹콩의 얼굴 표정은 인간의 표정처럼 섬세해 관객은 표정만으로도 킹콩의 내면을 알아 차리는데 부족함이 없다. 킹콩이 사는 미지의 섬인 해골섬에 서식하는 채식·육식 공룡들이며 기이한 파충류와 육식 식물들은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보여 줬던 괴물들만큼이나 기이하면서도 사실적이다.

이야기는 1930년대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다. 삼류 코미디 배우 앤 대로(나오미 왓츠 분)는 공연중이던 극장이 갑자기 폐쇄되면서 주급까지 떼이게 된다. 그는 오디션을 준비하던 희곡 작가 잭 드리스콜(애드리안 브로디 분)의 작품 연출가를 찾아 가지만 “캐스팅이 이미 완료됐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대신 삼류극장을 소개받는다.

그곳에서 만난 영화감독 칼 덴햄(잭 블랙 분). 그는 제작 중단 위기에 놓인 자신의 영화를 미지의 섬인 해골섬에서 완성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앤을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한 뒤 촬영팀을 모아 증기선을 타고 가는도중 폭풍우를 만나 해골섬에 표류하게 된다.

영화는 섬 원주민들이 킹콩에게 바치는 제물로 앤을 납치하면서 급선회한다. 드디어 킹콩에게 인간과 같은 감정이 덧씌워지는 순간이다. 킹콩은 제물로 바쳐진 앤의 매력에 점점 이끌리게 된다. 지난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img5,c,000}■풋풋한 가족애…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

전형적인 할리우드 크리스마스 영화다. 크리스마스를 통해 가족이 화해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내용에 로맨틱 코미디. 적당히 따뜻하고 유쾌하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사라 제시카 파커, 다이앤 키튼, 클레어 데인즈…. 지난 15일 개봉. 15세 관람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