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흩날리던 23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태풍’의 곽경택 감독이 저만치서 뛰어 왔다. 방금 감은 머리카락이 채 마르기도 전이다. 요즘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이날도 무대인사등 스케줄이 꽉 잡혀 있었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200억원),개봉 첫주 최다 관객동원(180만명),최대규모 미국 개봉 결정. 이 정도면 한창 들떠 있을법 한데 감독은 담담했고 좀 말라 보였다.
“뭐라 그러노…. 감독이 기획부터 촬영까지 3년정도를 영화에 매달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잘 되건 못 되건 내 손을 떠나는 거지. 솔직히 시사회후 평이 안 좋아 상처도 받았고,우리 영화가 (1000만까진) 힘이 달려보여서,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변수가 있겠지만 영화가 확 밀고 가진 못하는 것같아 속은 상하지.”
진인사 대천명. 할 만큼은 했으니 이젠 관객의 평가를 기다린다는 그는 “어제 ‘태풍’의 주요 관계자들이 만나 기분좋게 얘기했어요. 앞으로 일본,미국 개봉도 있으니 절대 당기던 줄을 놓진 말자고. 무슨 기록을 세우겠다,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는 보고 싶은 사람 다 볼 수있도록 하자,우리 영화를 신뢰하자 그런 분위기였지요. 지금은 마음이 편해요.”
엄청난 제작비에 곽경택 장동건 이정재에 대한 기대감때문에 ‘태풍’은 다른 영화에는 기대도 않았던 다양한 잣대로 ‘얻어 맞은’게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드라마가 지나치게 신파라는 지적이 가장 아프다.
“내가 탈북자를 워낙 잘 아니까 그 사람들 얘기를 많이 넣었어요. 분량은 줄여볼까 했어도 그 심도에 대해서는 고민 안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일부러 탈북자를 불쌍하게 만들려고 신파적인 내용을 넣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20여명의 탈북자를 만났다.
“처음엔 이들과 횟집에 갔는데 하나도 못 먹는거야. 그래서 다음엔 뷔페에 갔지요. 알아서 먹겠지 하고. 그런데 도통 접시를 들고 돌아다니지를 못하는 거야. 주눅들어서. 그때 내가 탈북자에 대해 아직 모르는게 많구나 생각했지요.”
부산이 고향인 감독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답답한 육지가 아니라 탁 트인 바다에서 태평양을 건너는 느낌으로,부산이 국제적인 도시로 보이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그러던 어느날 TV를 보는데 탈북자 가족이 나왔고 꼬마의 눈동자가 너무 불안해 보였어요. 저 아이가 만약 못 들어왔으면 어떻게 됐을까,영화는 거기서 출발했지요.” 누구보다 이 영화를 기다려 왔던 평안도 출신의 실향민인 아버지는 “마,수고했다.됐다”고 하셨다.
그가 처음부터 영화감독을 생각한 건 아니다. 사실 의사가 될 뻔했다. 의사인 아버지를 보며 다른 길은 생각을 안했다. “고 3때 아버지께 의대 가겠다고 했더니 “전쟁이 나도 의사는 안 죽인다.잘 생각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에겐 항상 북한이 쳐들어올 수 있다는 공포심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의대 들어 갔는데 주로 암기해야 하잖아요. 어느날 내가 이거 다 외어 인턴 레지던트 거쳐 병원에 남아 하루 종일 아픈 사람 돌보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뉴욕으로 날아갔다. “처음엔 광고 공부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러시아인 보리스 플루민교수를 만났는데 영화가 모든 영상물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강력한 매체라는 걸 깨달았죠.” 한동안 머릿속에 영화밖엔 없었다. “누워서도 영화만 생각했어요. 어떤 조명을 보면 저 배경에선 이런 내용을 찍는데 좋겠다 싶고,뭐 이러다보니 그때 실력이 많이 는 것같아요.”
영화찍는 고통은 너무 힘들지만 고통을 이겨낸 후의 환희는 10배 100배는 크다. 언제 그런 환희를 느끼냐고 물으니 “현장에서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똑같이 나올 때”란다. 그러면서 ‘태풍’에서 장동건이 이미연을 만나는 장면을 꼽는다. “동건아,이거 20년만에 만난거야. 칼 놓고 한숨쉬며 고개들고 약간 울분을 삼키며 저음으로 뱉어라. 액션! 그러면 동건이가 내가 예상한 대로 똑같이 내뱉는데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지요.”
장동건 얘기가 나오자 칭찬에 바쁘다. “장담컨데 오십이 넘어서도 멋있을 배우지요. 항상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연기이왼 다른 생각을 안한다니까. 내가 식당같이 하자고 졸라고 안 한다네(웃음).”
할리우드 진출은 “하다보면 기회가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라는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벌써 차기작을 준비중인 그는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세편이나 되는데 일단 ‘친구’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 될 거라고 귀띔했다.
영화 감독하면서 꼭 해보고 싶은 건 아버지가 주신 얘기다.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자주 들려주셨지요. 글로도 써보시라 했는데 정리를 해놓으셨더라고요. ‘친구’때 번 돈으로 ‘소의 눈물’이라는 수필집을 만들어 드렸어요. 어릴 때 고향에서 살았던 얘기,피난와서 고생했던 거,그런건데 아주 솔직하게 쓰여 있어요. 그거 한 번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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