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대학 연구실’과 ‘연구원’의 실체도 함께 드러났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지도교수는 ‘제왕’이다. 지도교수의 눈 밖에 나면 당장 주요 연구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 학위논문 심사나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대학원생이나 연구원들이 지도교수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이유다. 특히 이공계에선 현장에서 쌓은 오랜 경험보다는 학위가 우선이다. 학사 출신으로 10년 넘게 일한 연구원의 경우, 석·박사 후배들보다 인건비가 낮게 책정되는 실정이다. 연구원(대학원생)들이 하루 빨리 학위를 마치고 교수 자리를 잡거나, 사이언스·네이처·셀 등 유명 과학잡지에 단독으로 또는 공저자로 논문을 싣는 데 열을 올리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폐쇄적인 연구실 환경도 공개됐다. 서울대 수의대 생명공학연구팀 연구원은 31명이다. 미즈메디병원 의과학연구소 연구원 4, 5명도 황 교수 연구팀에 속한다. 그러나 연구팀은 서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구조다. 황 교수 연구팀은 줄기세포·동물복제·이종장기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줄기세포 연구의 경우, 체세포 핵은 서울대가, 배양이나 DNA 검증 등은 미즈메디 연구소가 맡았다. 이 같은 분업체제에서는 다른 파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논문조작을 방조·은폐한 ‘공범들’의 책임이 없다할 수 없다. “지도교수에게 찍히면 평생 고생”이라며 불합리한 지시를 참는 것은 한 개인의 사생활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행위다. 당장 논문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김선종 연구원이 “황 교수의 지시로 줄기 세포 2개를 11개로 늘렸으며 (서울대 수의대)강성근 교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실토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발족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몰랐을 ‘공모’ 사실이 계속 드러난다. 따라서 황 교수는 물론 논문 공저자 24명 그리고 논문 조작을 가능케 하고, 방관·묵인, 나아가 은폐를 시도한 사람들도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계, 언론계, 정계, 과학기술계 인사들과 주무부처인 과학기술부는 이 사건의 또 다른 종범”이라는 서울대 교수협의 지적은 옳다. 황 교수는 국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민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했으나 그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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