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손님은 왕이다.구세주.흡혈형사 나도열

만년조연이라고? 올핸 충무로 에이스!!

조연에서 주연으로… 한국영화 3選

● 손님은 왕이다

협박은 치밀하게…유혹은 은밀하게…

변두리에서 3대째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소심한 이발사(성지루 분). 비록 남이 보기에는 3류 이발사이지만 그는 이발사를 천직으로 알고 스스로를 ‘명 이발사’라 칭한다. 그의 평화로운 일상에 어느날 돌이 던져진다. “너의 더럽고 추악한 비밀을 알고있다”는 말과 함께 왠 정체불명의 협박자(명계남 분)가 나타난 것. 이 협박자는 이발사의 약점을 잡고는 방문할 때마다 정확히 두배 돈을 뜯어내 간다. 게다가 이발사의 아리따운 아내(성현아)에게 흑심을 품고 수작을 걸기도 한다. 참다 못한 이발사는 해결사(이선균 분)를 찾아가 협박자의 정체를 파헤쳐 달라고 의뢰한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며 다가오는 공포의 협박자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고 버티다가도 은근히 고민하게 될 것이다. 뭔가는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나. 영화는 이 점에서 썩 흥미롭게 출발한다.

일본 니시무라 교타로의 단편소설 ‘친절한 협박자’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약점 잡힌 인간이 무기력하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지켜보게 한다. 미장센도 인상적이다. 검정과 흰색이 교차되는 체스 무늬 바닥에 정신병원처럼 온통 하얗게 칠해진 이발소의 인테리어는 대단히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여기에 차가운 금속성 가위와 칼이 소품으로 놓여 있으니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극으로선 괜찮은 배경이다. 그러다가도 문을 열고 나오면 평범한 변두리의 광경이 펼쳐진다는 것 역시 재미있다. 이는 협박이 이발소 내에서만 유효하며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진 그 무엇임을 귀띔하고 있다.

성지루·명계남·성현아는 맡은 바 캐릭터를 충실히 소화해내며 비교적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문제는 후반부. 흥미로운 전반부에서 180도 좌표를 틀어버린 후반부는 황당하다. 협박범의 원래 직업이 단역 배우이고 그가 이발사 못지않게 스스로를 명 배우라고 여기는 것까지는 좋다. 3류 인생에 대한 찬가에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그런데 영화는 갑자기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다. 협박범을 연기한 명계남의 실제 캐릭터와 인생이 극중 캐릭터와 혼합이 되면서부터다.

그가 실제 출연한 ‘초록물고기’ 등의 영화가 거론되고 그들 작품에서 그가 연기했던 모습이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신선한 협박 느와르는 갑자기 신파조의 인생극장으로 돌변한다. 이때문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마저도 퇴색되버리고 만다. 잘 나가다 방향성을 잃고 사족을 붙인 격이다. 용두사미다. 2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 구세주

백만장자 내남자로 만드는 법

시사회 직전 제작사 대표가 등장해 “우리 영화 쌈마이(일본어로 삼류라는 뜻의 영화계 속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선입견이 못내 우려됐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그의 주장대로 쌈마이는 아니다. 신이와 최성국, 두 조연 배우를 당당히 주연으로 내세운 ‘구세주’(감독 김정우 제작 익영영화)는 두 배우의 이미지와 연기력을 결합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영화다. ‘색즉시공’을 통해 코믹 배우로 확실하게 자리를 매김한 두 배우는 열과 성을 다해 자신들의 첫 주연작을 만들어냈다. 최성국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느끼하기 이를 데 없는 이미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신이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위해 눈물겨운 투혼을 보였다.

특히 신이는 못생기고 가진 것 없으나 순정 하나만은 순도 100%인 여검사로 등장해 코믹과 액션, 멜로 등까지 소화해냈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연 관객이라면 몰라도 임팩트(Impact)의 결여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코믹적인 상황에 드라마까지 가미하려 했으나 몇몇 장면에서 억지웃음이란 잔상이 고개를 든다. 무엇보다 신이와 최성국의 개인기는 출중하나 두 배우가 자신들의 연기에만 급급한 채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는 인상은 큰 결함으로 보인다.

엄청난 부잣집 외아들 임정환(최성국 분). 굳이 사회에 나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연극학과 대학생활을 무려 10년째 이어가고 있다. 혼자 놀기 심심해 친구의 등록금까지 대주면서 말이다. 남들 버스 타고 가는 MT장소에 혼자 뚜껑 열린 외제차를 타고 도착한 정환은 얼떨결에 폭탄 고은주(신이 분)를 구하게 된다. 고은주는 자신의 구세주로 정환을 점찍는다. 은주는 입대한 정환을 갖은 방법으로 유혹해 마침내 겁탈당하는데 성공한다. 2년 후 여전히 날라리 대학생을 면치 않고 있는 정환 앞에 검사가 된 은주가 등장한다. 검사답게 친자 확인서류까지 준비하고 쌍둥이를 앞세운다. 얼떨결에 결혼하게 된 정환이 은주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가족애를 깨닫는다는 게 주요 내용. 사이사이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참. 김수미의 존재는 눈부시다. 단 5분 정도 나오는데도 그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하

나가 인상적이다.

● 흡혈형사 나도열

미국에 배트맨… 한국엔 ‘나도열’ 있다

배우 김수로의 코믹 연기를 믿는가. TV 오락 프로그램에 나왔다하면 대박을 터뜨리는 그의 입심에 지지를 보낸다면 ‘흡혈형사 나도열’(감독 이시명 제작 SM필름·청어람)이 선사하는 웃음의 코드 역시 정겹게 다가올 것이다. 다만 기대 심리는 좀 줄일 필요가 있다. 특히 그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나오는 증상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김수로와 이시명 감독은 코믹 영화를 만들면서 자존심을 지켰기 때문이다. 화장실 유머나 슬랩스틱 액션은 배제하는 대신 드라마를 강조한 것. “코믹 영화에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한없이 경박함으로 흘러 결국 뒷맛이 찜찜한 다른 코믹영화와 차별화를 꾀한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코믹 영화 기자 시사회에서 그처럼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온 건 꽤나 오랜만이다. 일단 데뷔 후 첫 단독 주연을 맡은 김수로는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성심성의껏 연기를 펼쳤다. 멍석이 제대로 깔린 덕분에 그의 풍부한 표정 연기는 더욱 생명력을 얻고 관객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능력은 이제 어떤 경지에 올라선듯 하다. 얄팍한 상황에 기댄 웃음이 아니라 꽉 찬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코미디인 까닭에 웃음은 부담없고 깨끗하다.

김수로의 연기와 보조를 맞추는 영화의 콘셉트도 인상적이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흡혈귀로 변하는 형사 캐릭터는 학교로 간 조폭못지 않은 활력을 얻는다. 그에 대한 제작진의 자신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반영된다. 기획단계에서 3편 제작을 못박았던 대로 아예 속편을 노골적으로 염두에 둔 것.

적당히 비리를 저지르며 사는 형사 나도열은 어느날 흡혈 모기에 물린 후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송곳니가 돋아나고 노란 고양이 눈이 되며 피를 빨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 적응할 새도 없이 더 기막힌 일이 발생한다. 형으로 믿고 따르던 선배 강형사가 나도열이 평소 뒤를 봐주던 조폭에게 당하고만 것. 비리는 저지르지만 기본적으로 순진하고 양심이 있는 나도열은 이에 격분, 강형사의 복수에 나선다.

‘2009로스트 메모리즈’에서 재능을 선보였던 이시명 감독은 전작과 전혀 다른 코믹영화를 자신만의 색깔로 칠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피가 흥건하지만 조폭코미디가 아니고 성적 코드를 이용했지만 거북스럽지 않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대신 확실한 캐릭터를 믿고 소신대로 드라마를 붙여나간 덕분이다. 나도열이 애인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설정이 닭살스럽지 않고 갑자기 깨달은 자신의 괴력에 철없이 취해버리는 모습 역시 밉지 않다. 한마디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 이로 인해 김수로를 보며 원없이 웃고 싶었던 관객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간 큰 가족’이 그랬듯, 흥미로운 소재와 결합한 알맹이 있는 코미디는 적어도 몸에 해롭지는 않다. 최소한 바보 흉내를 내지 않고도 웃길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그 점을 높이 산다. 15세 관람가.

{img5,r,000}● 전화번호에 얽힌 3인3색 러브스토리

전화번호에 얽힌 3가지 사랑이야기를 그린 단편영화 3편이 오는 1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시사회와 동시에 인터넷을 통해 개봉된다. ‘3인 3색 러브 스토리:사랑즐감’이란 제목의 이 영화는 KT가 제작하고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늑대의 유혹’의 김태균 감독 등 국내 유명 감독들이 참여했다. 영화는 전화번호가 사랑의 매개체가 된다는 공통 주제로 ‘기억이 들린다’, ‘I’m O.K.’, ‘폭풍의 언덕’ 등 단편영화 3편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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