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樞機卿·Cardinal)은 가톨릭에서 교황(敎皇)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갖는 성직이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중추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돌쩌귀’를 뜻하는 라틴어 ‘카르도(cardo)’에서 유래했다. 교황이 황제라면 추기경은 ‘교황청의 원로의원’으로 비유된다.
추기경은 가톨릭 주요 교구의 대주교를 맡거나 바티칸의 교황청에서 봉직한다. 바티칸에 상주하지 않더라도 바티칸시국(市國)의 시민권을 갖는다. 교황의 왕자 신분이기 때문에 ‘전하(殿下)’로 불린다. 추기경은 순교의 피를 상징하는 진홍색의 ‘수단(Soutane·발목까지 오는 예복)’을 입는다.
추기경단이 구성된 것은 12세기 중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세기까지 추기경 수는 24명으로 제한됐으나 16세기 들어 그 제한이 70명으로 늘었다. 추기경 정원 제도가 폐지된 것은 1962년 요한 23세 때의 일이다. 그뒤 사제인 부제 계층의 추기경 임명, 동방 가톨릭 교회(로마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동방교회의 독자적인 전례를 지키는 교회) 총주교들의 추기경단 영입 등으로 1974년 144명으로 늘었다.
올 2월 22일 15명의 새 추기경 서임으로 전 세계 추기경은 193명이 됐다. 이번에 정진석(75) 천주교서울대교구장이 한국인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돼 한국천주교는 1969년 서임된 김수환 추기경 이후 37년 만에 새 추기경을 맞았다.
정진석 추기경은 ‘옴니버스 옴니아(모든 이에 모든 것이)’라는 성 바오로의 말을 사목 지표로 삼아 교회 안팎의 화합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39세 되던 1970년 국내 최연소 주교 서품을 받았다. 정진석 추기경 서임은 450만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오랜 숙원이 이뤄진 경사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 공대생 시절 6·25 한국전쟁을 겪으며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원만하고 온후한 성품이지만 사제로서의 삶과 철학에 관한 한 타협을 불허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정 추기경은 “백성들에게 빵을 주는 게 정치의 본질이며, 생명의 빵이 되는 게 정치의 임무다. 정치인들은 봉사하라고 선택된 것이며, 봉사란 자기를 희생하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가까운 앞만 보지 말고 먼 후손을 생각하는 긴 역사적 안목을 갖고 정치를 하라”고 강조했었다. 정치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꼭 명심해야 할 금언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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