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국

미국의 평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미 국무부가 발표한 연례 국별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을 ‘인신매매국’으로 규정한 것은 수치스럽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한국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고문과 실종 등이 사라졌지만 여성에 대한 성차별, 가정폭력과 강간, 아동학대, 인신매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모두 1만227건의 가정폭력이 보고됐으며 1천114건이 기소됐다는 한국 법무부의 통계를 제시했다.

인권보고서는 또 한국 여성의 전화의 평가치를 인용해 대략 30%의 한국가정에서 폭력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강간은 같은 기간 중 6천620건이 보고됐으며 이 중 2만2천422명이 기소됐다고 열거했다. 특히 한국에는 여전히 매춘이 광범하게 이뤄지고 있고 최근에는 아시아 여성의 인신매매 주요거점이 됐다면서, 중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 여성들이 한국을 거쳐 미국과 다른 나라로 매매되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한국내에서 국제 결혼이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혈통주의 원칙때문에 외국인이 까다로운 귀화 절차를 통과하지 못해 여전히 ‘외국인’으로 남아 있는 등 소수 인종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탈북자를 제외하고 한국에 난민 신청을 낸 외국인이 지난해 1월부터 8월 사이 326명으로 급증했지만 “한국 정부는 관례적으로 난민자격 부여나 망명처 제공을 잘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정치적 기본권이니 인권문제에 대해선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나 국가보안법의 존폐를 지적하고, 이를 폐지하거나 대폭 개정하는 문제가 국회에서 계속 심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법의 신문시장 독과점 제한 규정에 대해 “이 법이 더 폭 넓게 다양한 관점들에 미디어 시장의 문호를 열어주게 될 것”이라는 한국내 견해와 “이 법이 발행인들과 편집인들의 자유와 자율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이라고 규탄한 또 다른 의견을 나란히 소개하며 미국의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다.

‘북한은 인권유린국’이라는 지적은 그렇다 치고, 한국의 여성차별과 가정폭력, 인신매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중국처럼 “너나 잘 하세요” 식으로 반론하지 못하는 데다 요즘 일어난 국회의원의 성추행 사건과 어린이 성폭행, 살인사건 등을 떠올리면 더욱 참담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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