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만지는 소녀

‘꽃과 여인’의 화가로 알려진 천경자(千鏡子) 화백은 수필집 ‘천경자 아프리카 기행화문집’과 ‘恨’ 등을 출간한 문인으로도 유명하다. 사십여년 쯤 전에 읽은 것으로 기억되는 千 화백의 수필 가운데 “소녀시절 하늘에 뜬 무지개를 만지고 싶어 언덕에 올랐다”는 내용이 있었다. 크게 공감했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 화백은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학생 시절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조부상’, 제23회에 ‘노부’를 출품했고 1944년 졸업했다. 1955년 ‘靜’을 대한미술원협회전에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54~1973)를 역임했고 현재 예술원 회원(1993년~)이다. 1998년 미국의 큰 딸 집으로 건너 간 千 화백은 2003년 봄 뇌일혈로 쓰러져 의식은 있지만 거동은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그 천경자 화백이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02-734-6111)와 두가헌 갤러리에서 지난 8일부터 ‘내 생애 아름다운 82 페이지’를 열고 있는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千 화백의 전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평일에도 줄을 잇는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 화풍을 보여주는 1950~1960대 미공개작 4점, 1970~1990년대 대표작 30여점, 평생 작업한 수채화와 드로잉 180점, 미완성작 42점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즐겨 입던 옷과 쓰던 물건, 여행지의 엽서와 사진, 인형과 장신구 등 각종 수집품도 군데군데 놓여 있어 千 화백의 체취를 전한다. 사람들은 천경자 화백을 ‘정한과 고독의 작가’라고 부른다. 곱고 화려해서 오히려 더 슬프고 쓸쓸한 그림들은 매우 자전적이다. 언젠가 “내 온몸 구석구석에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 있는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 슬픈 전설의 내력에는 아끼던 여동생의 죽음, 유부남과의 사랑 등 개인사도 있겠지만, 스스로 예술의 황홀감을 찾아 고독의 끝까지 치달았던 모진 여정이 깔려 있을 터이다. 46세부터 74세까지 28년간 열두 차례나 해외 스케치 여행을 떠나 지구를 한 바퀴 돌다시피 한 것도 예술가로서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무지개를 만지러 산을 넘던 천경자 화백의 소녀적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내 생애 아름다운 82 페이지’展은 4월 2일까지 열린다./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