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동포 장률 감독 ‘망종’…잔잔하고 묵직한 조선족 여인의 비극

재중동포 장률(44) 감독은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그의 두번째 연출작인 ‘망종’이 지난해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ACID상,페사로 영화제 뉴시네마상,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에 이어 지난 2월 프랑스 브졸 아시아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망종’은 중국내 소수민족인 조선족 여인 최순희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작품. 주인공을 통해 민족차별과 여성차별의 이중고를 절제된 화면과 대사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잔잔하고 묵직한 이 영화가 24일 관객을 찾는다.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감독을 만났다. 중국어가 익숙한 그는 통역이 있음에도 한국어로 천천히 얘기를 풀어갔다.

제목 ‘망종’에 대해 그는 “농경사회에서 보리를 수확하고 볏모를 심는 가장 바쁜 시기”라며 “김치를 팔며 열심히 살아가는 최순희는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어려움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녀의 삶이 망종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중 남편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불법으로 김치를 팔다 단속반에 쫓기는 최순희는 믿었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한다. 감독은 남자의 배신이라는 부분에 대해 “사랑 앞에서 여자는 모든 것을 다 걸 정도로 용기가 있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마지막 장면,최순희가 망연자실해 어디론가 걸어가는 뒷모습은 보는이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감독은 “장소 헌팅을 갔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최순희의 집에서 대합실을 거쳐 철길을 건너 보리밭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보며 머릿속으로 마지막 장면을 구상했다. 자세히 들으면 여자의 발자국 소리가 어느 순간 멈춰 다시 돌아온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 나에게로,내 마음속으로 오는 것이고 그것이 날 안정시켰다. 그러니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말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2000년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만든 단편 ‘11세’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감독은 영화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은 없다. “그땐 할리우드 영화만 봤을 때니까 용기가 났지요(웃음). 예술영화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요즘에서야 다른 영화를 보면서 식은땀을 흘려요. 알았으면 영화감독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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