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작은 딸아이가 필자에게 이러쿵 저러쿵 잘못을 꼬집으면서 “자기만 나무란다”고 화를 냈다. 아직 고2인 작은 딸이 그런 말을 하니 속이 상했지만 아침부터 마음상할까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애지중지 키워놓았더니 이제 엄마한테 대드는구나’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출근하는 내내 시골에 계신 친정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절로 흘러 내렸다. 가끔 어머니가 올라 오셔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하실 때마다 “잔소리 그만하시라”고 말했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부천문화재단 산하 부천시여성회관이 진행하고 있는 사회교육프로그램은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각 강좌 10%에 한해 선착순 우선등록시 수강료 1만원을 내는 특혜가 있다. 출근 후 10% 선착순 추첨장소에 참석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건강에 관한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으신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어르신들은 주로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도 있고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분들인데도 당첨되지 않은 분들은 등록하지 않고 다음 학기를 기다리며 되돌아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문화재단 프로그램의 활성화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어르신들의 건강도 걱정이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아침에 딸과 있었던 얘기를 하면서, “문화재단은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 고생하시면서 성실하게 납부하신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건물도 그렇게 지어진 것입니다. 어르신들은 이 시설을 이용하실 충분한 자격이 있으며 10% 추첨때문이라면 차라리 자식들한테 몇만원 더 보내달라고 하세요. 10% 추첨 기회를 잡기 위해 운동을 쉬다 혹시 건강이 나빠지면 결국 어르신들만 손해입니다”라고 말씀드리자 89세 된 할머니께서 우시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당신도 예전에 당신 어머니한테 우리 작은 딸이 내게 했듯 그렇게 했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문화재단에 올 수 있는 기력만으로도 복이라고 생각하시고 문화재단에 오고 가는 것 자체를 즐겁게 생각하시고 주인의식을 갖고 노시고 차도 마시고 애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치워 주시기도 하셨으면 합니다”라고 말씀드리자 그제서야 “그래. 우리 상임이사님 말이 맞어”하시면서 거기 계신 모든 분들이 등록하셨다.
이처럼 길게 강좌등록의 풍경을 기술하는 까닭은 다름 아니라 공공기관의 문화프로그램 운영의 근본목표가 생활에 지친 시민들에게 생활에 대한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삶의 활력과 휴식을 주기 위해서 이기때문이다. 그러기에 가능한 많은 시민들이 이용해주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문화수요는 생활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필수재라기보다 선택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수한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홍보 없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운영하고 있는 문화프로그램에 대한 홍보에 소극적이다. 결국 심사숙고해 만들어진 좋은 프로그램이 마땅한 홍보를 하지 않으므로 인해 프로그램이 일방적으로 흘러가 버리고 그래서 사장되거나 인기가 시들해져 실패하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시민들의 주인의식이다. 문화시설이며, 직원이며, 프로그램 등 모든 것이 시민 여러분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문화시설의 주인은 곧 시민 여러분이란 강한 주인의식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문화시설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언제든지 자기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문화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소임일 것이다. 4천500만 국민 모두 문화시설을 제 집 드나들듯 문턱이 닳아지길 간절히 바란다. 문화시설 종사자 여러분. 파이팅.
/박 두 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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