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용어 가운데 패러디란 말이 있다. 패러디(Parody)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패러디는 문학 작품의 한 형식으로 어떤 저명 작가의 시구나 문체 등을 모방해 풍자적으로 꾸민 익살스러운 시문(詩文)을 말한다. 패러디 형식은 문학 작품에서 먼저 시작됐으나 이제 예술의 모든 장르는 물론 드라마나 개그 등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 코드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필자는 이 패러디 형식을 일찍부터 즐겨 사용해 왔다. 뭔가를 삐딱하게 보고 풍자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게 체질에 맞는 모양이다. 이러한 체질은 집안 내력인지도 모른다. 필자의 아버님도 유머감각이 뛰어 나셨지만 이름을 지어 주셨다는 할아버지는 더 뛰어나셨던 모양이다. 아버님이 평양의전을 다니실 때 할아버지가 며느리 몫까지 셈해 고루 상속을 하셨는데 아버님이 어머님 몫까지 챙겨 평양의전을 때려 치우고 평양 최초의 자동차 운전학원을 차리겠다고 덤비셨단다. 할아버지가 이 고집을 말리기는커녕 “그래라. 앞으로 의사가 많아져 가방 하나 메고 ‘병 고치시오. 병 고쳐’하고 길거리에서 떠돌이 행상처럼 떠돌지도 모르니까”라고 오히려 아들의 고집을 두둔하셨단다. 이 말씀은 그 당시 봉건제도에 길들여진 어른들의 고집스러운 결정과는 다른, 세상을 유쾌한 예지로 판단하는 풍자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그림이 우리의 근대화와 관련된 역사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림이 무거워지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역사적인 무게에 짓눌려 필자의 그림이 관객들에게 외면당하는 걸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나 연극에서의 패러디는 주로 유명 작가의 시구나 문체 등을 빌려다 풍자를 위해 사용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필자의 그림에선 유명 작가나 무명 작가 등을 구별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의 도상이나 구성형식 등을 차용할 때가 많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작품에서도 좋은 표현이나 그럴듯한 도상들을 필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으면 서슴없이(?) 갖다 쓴다. 좀 심하면 인용이나 차용을 지나 도용(盜用)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아프리카의 흑인 미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피카소와 브락크는 서로의 그림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입체파적 화풍으로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어떤 미술에서 영감을 받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 우리는 인용, 차용, 영감과 영향력 등이 모두 넓은 의미의 패러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로 올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패러디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TV 개그에서 잘 생긴 여배우의 얼굴과 약간 독특하게 생긴 추남의 얼굴을 반씩 섞어 전혀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 내고 웃고들 있다. 별로 신선하고 재미있는 개그는 아니지만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서로의 얼굴을 반씩 제공해 전혀 새로운 도상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상향식 패러디를 보여주는가 하면 동시에 하향식 패러디도 보여 주고 있다. 두가지를 다 보여 주지만 못생긴 추남의 얼굴에 대한 풍자보다는 잘 생긴 여배우의 엉뚱한 이미지를 보고 관객들은 웃는 것이다.
이렇듯 패러디에는 다른 맥락에서 이뤄진 것을 같은 맥락 속에 집어 넣어 전혀 엉뚱하고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낸다. 그랬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가지 새로운 맥락들이 발생하고 확장되면 우리는 그것을 예술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의 진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김 정 헌 공주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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