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9월 초까지 이어진다지만 아침 저녁 공기는 이미 달라진 느낌이다. 여름 내내 공포물과 코미디,가족극으로 가벼워졌던 영화계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내려앉는 모습이다. 현실에 기반한 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봉을 앞둔 ‘호텔 르완다’(9월7일) ‘플라이트93’(9월8일) ‘세계무역센터’(10월20일)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국영화 중에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재현할 ‘가을로’(10월19일 예정)와 1986년 건국대 사태를 비롯한 1980년대 사회를 그려낼 황석영 원작의 ‘오래된 정원’(10월중)이 곧 공개된다.
이 작품들을 보면 외화들은 실제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조명하는 데 주력한 반면 한국 영화는 실화를 모티프로 한 멜로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각기 목적은 달라도 잠시나마 현실을 돌아보게 해줄 이 작품들을 먼저 들여다본다.
◇호텔 르완다=1994년 르완다에서는 내전이 일어나 무려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까지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전의 원인이 무엇인지, 참혹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세계 정세는 어땠는지 알기는 어렵다. ‘호텔 르완다’는 이 참상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되 설명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또 남의 아픔에 몇 분의 관심도 돌리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뼈아픈 일침이 들어있다.
영화는 르완다의 다수민족인 후투족이 소수의 투치족을 무차별 학살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근무하는 호텔에서 1268명의 투치족을 100일간 지켜낸 인물 폴 루세사바기나의 실화를 그린다. 처음에는 가족밖에 모르던 그가 차츰 모든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고 온몸으로 위험을 막아내는 모습은 뭉클함을 준다.
◇플라이트93·세계무역센터=‘본 슈프리머시’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만든 ‘플라이트93’과 올리버 스톤 감독의 ‘세계무역센터’는 둘 다 9·11테러를 소재로 삼았다.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이 사건은 영화화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만큼 힘있는 소재지만 아직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두 감독 모두 테러의 원인은 건드리지 않고 이로 인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서민들에게만 카메라를 들이댔다.
먼저 공개된 ‘플라이트93’은 당시 납치된 네 비행기 중 유일하게 목표물 충돌에 실패한 UA93편 안의 상황을 당시 탑승자들이 가족과 나눈 기내 통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 용기를 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을 주지만 아랍인 테러범들간의 대화는 자막조차 달지 않는 등 미국 관객만을 고려한 측면은 거슬리다.
◇가을로·오래된 정원=‘가을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애인 민주(김지수)를 잃은 남자 현우(유지태)의 이야기다. 미니어처와 CG 등으로 재현된 백화점 붕괴와 폐허 장면은 전체 영화의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그러나 주인공은 허구의 인물이며 줄거리도 민주를 잊으러 떠나는 현우의 여행이 중심이다.
‘오래된 정원’은 지진희와 염정아가 연기할 두 주인공이 원작보다 밝아진 느낌은 있지만 비교적 소설을 충실히 살린 작품이다. 이를 위해 건국대 사태를 재현해 찍었고 3∼4분 분량으로 포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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