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국가가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시절의 이야기가 스크린에서 선보인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아니다. 불과 20~30년 전의 실제상황이다. 도대체 국가가 시행하는 가족계획의 의미는 무엇일까.
30일 오전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믹 영화 '잘살아보세'(감독 안진우, 제작 굿플레이어)의 제작보고회에서 주연배우 김정은은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사는 일은 어떤 일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코믹 연기의 달인인 이범수와 김정은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정부의 가족계획운동이 펼쳐지던 1970년대 농촌 마을 용두리에 파견된 보건사회부 요원과 마을 이장이 용두리의 출산율 0%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무시무시한 표어가 생명력을 얻던 시절, 처녀 요원이 마을 사람들에게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고 이장이 주민의 잠자리를 감시하는 등 웃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오버 더 레인보우'와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만든 안진우 감독은 "70년대 가족계획이 현재와는 전혀 상반된 상황이라는 아이러니에서 출발한 영화"라며 "지금 와서는 많이 낳자고 하는데, 도대체 '조금 낳자'와 '많이 낳자'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특별히 1970년대 실제로 보사부 가족계획 요원으로 활동했던 손현옥 요원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잘살아보세'는 추석을 겨냥해 9월28일 개봉한다.
다음은 참석자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실제로 가족계획 요원으로 활동했는데, 당시 상황이 어땠나.
▲70년 초부터 30년간 최일선에서 가족계획과 관련해 일하고 2년 전에 퇴직했다. 30년 전에는 국가 정책이 내 최선의 임무라 생각하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좀 후회스러운 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이렇다할 성교육 매체나 기회가 없어 저희 요원들의 입을 통해서만 성교육이 이뤄졌다. 콘돔 사용법을 설명할 때 콘돔을 엄지손가락에 끼고 설명했더니, 실제로 손가락에 콘돔을 끼고 부부생활을 해 임신한 사람들이 있었다. 또 피임약을 남자가 복용해 피임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손현옥, 이하 손)
--당시 상황을 단순히 희화화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어떤 영화인가.
▲직접적 드라마보다는 코믹한 상황으로 재미를 전달하려 했다. 블랙 유머의 경향도 있다. 아무래도 성적인 부분을 얘기하다보니 노골적으로 할 수 없어 코미디를 차용했다. 당시의 가족계획 사업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지금 와서 다출산을 하자는데 실제로 그때 '조금 낳자', 지금 '많이 낳자'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안진우 감독, 이하 안)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정은 씨의 경우 민망한 연기는 없었나.
▲솔직히 전혀 민망하지 않았다. 소재적인 문제여서 그것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다. 직설적으로 피임법을 강요하고 정관수술을 가르친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임무가 있어, 원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연기하면서 더 잘 알게 됐다(웃음).
'사랑니' 이후에 "손바닥 뒤집듯 변신하려는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원래 갖고 있던 밝은 이미지를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는 밝은 이미지와 함께 한층 깊은 뭔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같은 코미디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사회 풍자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영화다. 과연 당시의 정책이, 지금의 정책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지 얘기하는 영화다. (김정은, 이하 김)
▲시나리오 읽고 이틀 후 바로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다. 남을 웃기게 하는 일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연기에 있어서 웃기는 것에 보태, 감동과 가슴 뭉클한 공감까지를 전해 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다짜고짜 까부는 연기와는 다른 연기를 보여줬다고 자신한다. 상황은 웃기고 어처구니없지만, 그 당시 국민은 진지했고 절실했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국가 정책대로 따르면 정말 엄청난 행복이 생기는 줄 알았던 사람들의 마음과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 사이 간극에서 오는 재미와 깨달음이 좋았다.(이범수, 이하 이)
--두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탈고하고 나서 든 생각은 자연스러운 코믹연기를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정극 연기가 되는 배우를 캐스팅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코미디 같지만 드라마를 밑에 깔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이 두 분 말고는 조건에 맞는 배우가 별로 없다. 다행히 두 분 다 흔쾌히 한다 해서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안)
--코미디 영화치고 촬영을 꽤 오래했다.
▲6개월간 66회 촬영했다. 이범수, 김정은 외에도 조연들이 화려하다 보니 스케줄 맞추기가 힘들었고, 7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전국 10여 곳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또 날씨 맞추는 게 어려워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열흘씩 촬영하다 보니 기간이 오래 걸렸다.(안)
▲감히 안 감독님을 자랑하면, 크랭크 인 날 촬영장에 갔는데 배경이 무척 좋았다. 이렇게 기가 막힌 장소를 어떻게 헌팅했느냐고 물었더니 감독님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감독님이 한국의 명소를 찍은 사진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사진작가 분께 장소를 알아내신 거더라. 극중 마을 언덕, 마을 공터, 산길, 보리밭, 나무 아래 등의 공간이 전국 방방곡곡에 넓게 포진돼 있었다. 촬영 동선이 길었다. 덕분에 영화의 그림, 경치가 무척 예쁘고 좋을 것이라 기대된다.(이)
--서로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김정은 씨 만나기 전부터 김정은 씨 팬이었다. 동료배우에게 감히 연기를 잘한다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거두절미하고 평소에 추구하는 연기랄까, 김정은 씨는 진지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언젠가는 저 배우와 호흡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일해보니 근래 보기 드문 착실하고 거부감 없는 배우다.(이)
▲영화를 하면서 선배님께 참 많이 배웠다. 배우는 연기할 때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멋진데, 우리 영화가 코믹하고 재미있는 대사가 많아 매사 웃고 NG도 많이 낸 것 같지만 선배님은 NG가 없었다. 연기에 임할 때 누구보다 진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못 가진 부분을 많이 가진 것 같다. 난 연기 전공도 안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머리 깎고' 시작했는데(웃음), 선배님처럼 연기를 전공하고 연기의 정통 코스를 밟은 분을 만나면 존경스럽다.(이)
--'잘살아보세'만의 승부 포인트는 무엇인가.
▲추석에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다. 저출산이 국가 문제가 된 지금 불과 30년 전 산아제한을 강압적으로 하고 있던 나라가 우리나라다.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정반대의 상황이 된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코미디와 풍자가 어우러질 수 있는 소재 중 이만한 소재가 없을 것 같다.(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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