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복고풍

일본 열도는 태어난지 삼칠도 안 되는 갓난 왕손으로 아직도 들떠있다. 일본 아키히토 국왕의 둘째 며느리인 기코 왕자비가 아들을 낳은 도쿄 왕실병원에서 퇴원한 게 지난 15일이다. 퇴원길에도 출산 때와 같은 인파가 연도를 뒤덮었다. 일장기며 축하 피켓을 든 인파 중엔 기코 왕자비 내외가 탄 승용차가 지나갈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 왕실에선 41년만에 태어난 아들이라 그렇다지만 왕손 출산을 나라의 큰 경사로 감격해하는 들뜬 정서가 지금도 요란하다. 아기는 큰아버지되는 나루히토와 아버지인 후미히토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이 세 번째다. 현 국왕은 두 아들에게 아들이, 그러니까 세손이 없어 왕실전범을 고쳐 큰 아들의 딸로 왕위 계승자를 삼으려다가 둘째 며느리가 아들을 낳은 바람에 왕실전범 고치는 일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일왕의 두 며느리는 왕실의 안정을 위해 여전히 더 많은 아들을 바라는 출산의 압력을 은근히 받고 있다. 이번에 아들을 낳은 기코 왕자비도, 아들을 못 낳은 마사코 왕세자비도 다 같은 처지다. 국왕의 큰 며느리인 마사코는 올해 마흔두살이고, 작은 며느리인 기코는 설흔아홉살이다. 아이를 더 갖기엔 좀 어려운 나인데도 왕실과 일본 사회는 아들의 출산을 더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심 스트레스가 쌓인 큰 며느리는 지금 친정 부모가 있는 네덜란드로 여행 중이다.

일본의 나라꽃은 벚꽃이지만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은 국화다. 국화가 새겨진 문양은 신성시 하는 것이 일본의 국민성이다. 일본 헌법의 국호는 ‘대일본제국’이다. 제국이긴 하지만 일본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왕실을 극진히 받드는 일본 국민들은 국왕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2차 대전 땐 죽은 히로히토 국왕을 ‘살아있는 신’(神)이라고도 했다. 갓난 왕손으로 열도가 열광하는 일본 국민들의 모습에서 일본의 복고풍을 발견한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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