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린 시절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링컨은 새 엄마가 가지고 온 물건 중 묘한 것을 발견했다. 천으로 만든 그것은 폭신폭신하고 따뜻했다.
“이게 뭐예요?” 링컨의 물음에 계모는 깜짝 놀랐다. 홀아버지 밑에서 너무 가난하게 살아 온 링컨은 베개가 뭔지 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금세 계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계모는 이 불쌍한 의붓자식에게 친자식 이상 잘해주리라고 결심했다. 링컨은 여전히 가난했지만 새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올곧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정직한 에이브’가 링컨의 애칭이었다.
‘콩쥐 팥쥐’ ‘장화홍련’ ‘백설공주’ ‘신데렐라’ ‘ 핸젤과 그레텔’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설화나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계모는 거의 비인간적이다. 그 중 콩쥐 팥쥐와 신데렐라는 전래지역과 관계없이 비슷하다. 그러나 오늘날은 혈연을 넘어서는 이른바 ‘대안적 가족 관계’가 생겨나고 이혼의 급증과 함께 피로 맺어지지 않은 재혼 가정도 급속히 늘고 있다.
그러함에도 설화처럼 계모가 전실 소생의 자식을 학대하는 사건이 가끔 일어난다. 전실 소생 딸을 세탁기 통에 넣고 돌려서 아이에게 악몽적 상처를 입힌 비정한 계모 이야기도 있었다. 그럴 때 답답하고 의심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라는 남자’의 존재다. 계모형 설화 속에서 아버지는 전처 소생 아이들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 출타중이거나 관심이 없다. 생모는 착하고 아버지는 후처만 믿는 무심한 가장이다.
그러나 사실 계모는 고달프다. 계모가 아이들에게 ‘잘 하나 못 하나’ 하고 바라보는 시댁식구들의 감시, 생모 친정식구들의 의혹의 시선에 시달린다. 새 엄마를 기피하는 전실 소생들의 언행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집에 늦게 돌아오고 말을 듣지 않아서 어린 의붓자식들을 마구 때려 딸을 숨지게 하고 아들을 중태에 빠뜨린 20대 주부의 모습은 용서하기 어렵다.
‘계모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말했지만, 링컨의 계모 같은 새 엄마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12일 막을 내린 SBS-TV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선 무조건 반항적이던 의붓딸이 새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착한 딸이 되었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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