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내한공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내한공연은 존재 그 자체로, 또한 그들이 연주하는 프로그램으로 언제나 독일 클래식 음악의 정통성과 역사를 대변해 왔다.

그 기원을 찾아 15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이 독일 최고(最古) 악단은 쉬츠, 베버,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악단을 거쳐 간 작곡가의 이름만 거명하더라도 그 누적된 음악성과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 베를린필하모닉을 비롯한 독일의 대표 악단들이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며 다양성을 추구해온 반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전통지향주의를 추구하며 독일 전통을 철통같이 고수해 왔다.

그로 인해 가장 오랜 역사와 그 특유의 보수성은 그들을 '가장 독일적인' 악단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 음악감독 시노폴리가 급서한 일은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악단에 치명타를 주었으나 이후 영입한 명장 하이팅크의 지휘봉 아래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고, 지금은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2007년 상임 자리에 내정된 상태다.

그들이 정명훈과 함께 내한공연에서 마련한 브람스(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와 베토벤(18일 예술의전당)은 전반적으로 그들의 보수성을 그대로 드러내듯 무뚝뚝하고 투박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매끄럽게 다듬어낸 인위적인 연주보다도 작품들이 지닌 성향과 지극히 잘 어울렸다. "진실은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는 말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오랜 지론이기도 하다.

브람스 교향곡 1번과 4번은 거칠지만 적극적인 현악 파트가 인상적인 연주였다. 특히 1번에서는 비올라와 제2바이올린의 내성이 일품이었으며 두 선율의 대위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다소 애매한 템포와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공간적인 제약은 작품에 내재한 다이내믹한 측면을 부분적으로 감소시켰다.

1번 교향곡에서 도입부 이후 마지막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팀파니는 소리가 객석까지 그 온전한 무게감을 전하지 못했고 쭉쭉 뻗어나와야 할 금관 파트의 메아리는 외려 무대 뒤로 퇴보하는 듯 했다.

물론 이는 악단의 문제가 아니라 공연장의 문제였다. 이러한 한계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폭발해야 할 4번 3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연장은 악단의 역동성 뿐 아니라 디테일도 가로막았다. 2악장의 피치카토와 호른, 클라리넷, 그리고 현악기의 솔로 파트가 섬세하게 다가오지 않아 답답했다.

이러한 모든 악조건은 다음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완벽하게 만회되었다. 첫 곡으로 연주된 베토벤 교향곡 6번은 빠르지 않은 템포에 작품이 지닌 자유로운 춤곡의 성격이 투박하지만 유동적인 현파트를 통해 소박하게 연출되었다.

이어진 교향곡 5번 '운명'은 악단의 성격과 지휘자의 음악성이 찰떡궁합을 이룬 호연이었다.

작곡가가 작품에 심어 놓은 다이내믹과 정신적인 힘의 폭발은 이성과 감정, 형식과 역동성이 매우 균등하게 배분되어 최고의 동반상승효과를 가져왔다.

정명훈의 과격하고 역동적인 지휘 아래, 악장은 이를 노련하게 수습하고 단원들을 이끌었으며, 단원들은 지휘와 악장 사이에서 기존 자신들의 노선을 충실하게 밟아갔다.

전날 답답하기 짝이 없던 금관 파트는 이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일사불란하면서도 시원스럽게 터져주었고 팀파니 또한 제소리를 찾았다.

하지만 이날 최고의 호연은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이었다.

베버는 이 악단의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마탄의 사수'는 바로 그의 지휘 아래 이 악단을 통해 초연된 오페라였다.

교향곡으로 이루어진 본 프로그램에서 전반적으로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자신들의 본 영역인 오페라 레퍼토리에서 여유를 되찾고 한껏 날개를 펼쳤다.

앙코르를 위해 일부러 교체시킨 클라리넷 주자가 '마탄의 사수'를 위해 뽑아내는 저 유명한 낮은 소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으며 호른 4중주 또한 흔들림 없이 매우 탄탄했다.

과거 시노폴리 생전에 찾아왔던 이 악단은 유사한 순서의 감동을 한국 청중에게 선사한 바 있다. 당시 앙코르 또한 그들이 초연기록을 가지고 있는 바그너의 '리엔치' 서곡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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