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방한한 소프라노 유현아

"저 자신이 음악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싶어요."

데뷔 음반(EMI 클래식) 발매와 더불어 한국을 찾은 소프라노 유현아(38) 씨. 19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난 그에게서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말이 끝날 때마다 높은 톤의 목소리로 '하하하' 유쾌하게 웃는 그다.

서울 태생으로 1981년 중학생 때 장로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간 유씨는 텍사스주립대에서 분자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도였다.

그러나 1991년 결혼 후 얼마 안돼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냈다. 발렌타인데이인 1993년 2월14일 유씨가 필라델피아 교회 성가대에서 연습을 하는 동안 남편 유영호(당시 27세) 씨가 아들을 재우기 위해 차에 남아있다가 10대 소년들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것.

유씨가 지금도 '나의 전부'라고 말하는 남편이었다. 이 사건은 의사를 꿈꾸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미국 이민 전 예원학교에서 1년간 성악을 공부한 인연 때문이었을까. 통곡에 이은 기절을 거듭하던 그는 피아니스트인 언니의 권유로 노래를 시작하면서 새 삶을 찾게됐다.

"사람은 너무 큰 불행이 닥치면 잘 기억을 못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잘 몰라요. 주변 사람들이 제가 자주 기절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는 25세 때인 1993년 피바디 음대에 진학했다. 다른 성악가들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현재 그는 '미국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3년 만에 학부를 끝내고 석사는 1년 만에 졸업했다. 1998년 네덜란드 콩쿠르 입상, 1999년 나움버그 국제 콩쿠르 우승, 2003년 제1회 보를레티 부이토니 상 수상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제가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는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항상 감사하죠. 하지만 그동안 어려움이 왜 없었겠어요. 저는 뭔가를 할 땐 항상 열정적으로 몰입해서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는 무대에 서기 전 세 가지를 꼭 기도한다. 자신의 목소리, 모습 등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가 청중에게 전해지도록, 그날 해야하는 음악이 작곡가의 의도대로 가감없이 전해지도록, 그리고 그날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음악을 듣고 마음의 상처가 아물거나 마음이 열리도록.

"사건 이후 몇 년 동안은 밤에 남편 꿈을 꾸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그는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오래 노래를 계속하고 싶다"면서 "내년에 큰 무대에도 설 예정인데, 계약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라고 말하면서 다시 밝게 웃었다.

그는 27-30일 세종문화회관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송년음악회에서 솔리스트로 나서는 것으로 고국 무대에 데뷔한다. 현재 미국 볼티모어에 거주 중이다.

/연합뉴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