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문건 유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미국측 대표단 중엔 동양인이 있다. 직급으로 치면 과장급이다. 핵심 멤버의 실무 진영이다. 우리 대표단은 처음엔 중국계 미국인 줄 알았다. 그래서 회담 테이블에서 우리 대표끼리 의논할 일은 한국말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동양인 미국측 과장이 바로 한국계 2세더라는 것이다. 한국인 핏줄이 FTA협상 같은 자리에 나올만큼 중요 요직에 오른 것은 반가운 일이긴 하나 나라와 나라의 입장에서는 또 다르다. 게다가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우리 말을 잘 모르는 것과는 달리 그는 한국말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담 테이블에서 우리 대표단이 우리 말로 의논한 내용을 그 한국계 미국 대표단 과장은 거의 알아들은 것이다.

그가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사석에서는 우리 대표단과 우리 말로 친근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회담장에 들어서면 판이한 것으로 전한다. 어디까지나 미국 국익의 입장에서 펴는 주장이 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대표단은 이래서 처음과는 달리 우리끼리의 회담장 대화도 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번엔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국회에 제출한 정부의 FTA 협상전략 비공개 보고서 문건이 통째로 유출된 것이다. 일부 신문과 방송에 보도까지 됐다. 컨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관련 보도 내용을)꼼꼼하게 잘 봤다”고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에게 말했을 정도다. 김 수석대표는 이를 전하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비공개 문건 유출을 개탄했다.

미국측 대표단 관계자도 “미국에선 비공개 문건 유출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우리측의 문건 유출과 일부의 언론보도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알 권리를 내세우며 언론의 자유를 구가하는 미국 언론도 국익을 해치는 비밀 문건은 보도를 절제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문건 진본은 정부에서 이내 회수한 것으로 알려져 유출된 건 복사판인 것으로 밝혀졌다. 비공개 문건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지만, 이를 고의로 유출하고 또 보도한 언론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마 FTA 반대 세력이 고의로 유출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협상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수치일 뿐이다. 다만 협상전략이 노출된 판이니 협상에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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