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아침이 상쾌한 이유
9일 새벽 4시께 수원시 팔달구 지동 못골사거리.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출근 차량이 도로를 가득 메우기 몇 시간 전 새벽 도심은 간간이 오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가로등 불빛으로 어스름했다.
몇몇의 차량들이 거칠 것이 없다는 듯 때때로 교통신호도 무시해 가며 1번 국도를 질주하고 있었지만 전후좌우 환한 불빛을 밝힌 녹색 차량 한대는 유난히 더뎠다. ‘구역차’라고 불리는 팔달구 소속 청소차가 대로변 가로수 아래 정차하면서 이날 첫 쓰레기 수거가 시작됐다.
청소차에서 내린 환경미화원과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경미화원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 차량이 비스듬히 가로수 아래로 후미를 갖다 대자 수북이 쌓여있는 쓰레기 봉투들은 1분도 채 안돼 청소차에 실렸다.
청소차를 운전하는 이모씨(54)와 쓰레기 수거를 담당하고 있는 윤모씨(50), 정모씨(50)는 이처럼 매일 새벽 못골사거리 입구를 시작으로 지동을 청소하고 있었다.
노련한 손놀림으로 어느새 가로수 아래가 깨끗해지자 윤씨가 차량 후미에 달려있는 버튼을 눌렀다. ‘삑, 삑’. 이씨는 두 번의 부저음을 듣자마자 차를 출발시켰고 윤씨와 정씨는 어느새 차량 후미 안전봉을 잡은 채 ‘탑승’해 있었다.
하지만 ‘탑승’도 잠시. 주택가 도로로 들어선 이들은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쓰레기로 가득찬 마을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월요일 새벽은 이들에게 가장 힘든 하루. 주말 동안 한꺼번에 쌓인 쓰레기로 이틀치 분량을 하루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는 적고 대부분이 주택가인 지동은 팔달구에서도 청소차가 가장 많이 움직여야 할 곳이다.
그러나 9년차 윤씨와 4년차 정씨는 2년간 손발을 맞춘데다 동년배의 편안함까지 더해져 호흡이 척척 맞았다. 규격 쓰레기 봉투 대신 일반 비닐봉지에 아무렇게나 담긴 쓰레기도 정씨와 윤씨는 손으로 한번 툭툭 쳐보더니 무엇이 들어있는 지 금방 아는 듯 분리해 냈다. 청소차에 한가득 쓰레기가 실린 후 윤씨가 또다른 버튼을 누르자 청소차의 압축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쓰레기 봉투들을 안쪽으로 바짝 밀어 넣었다. 한 무더기의 쓰레기 더미가 사라질 무렵 윤씨의 손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들려 있었고 너저분해진 길바닥은 어느새 깨끗해졌다.
재활용품이 담긴 몇몇 봉투들은 뒤따르는 재활용차의 몫으로 남겨졌다.
4시 20분. 못골놀이터에 이르자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청소차를 집어삼킬 듯 보였다. 수분간 ‘쓰레기산’을 깎아내릴 무렵 반가운 음성이 들렸다.
“어이구, 많아! 많아!”
“안녕하세요. 어르신. 월요일 아침인데 많지요”
정겨운 인사를 건네는 주민 이순성씨(72)는 3년째 손수레를 이용해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못골놀이터 주변 골목골목에 쌓인 쓰레기를 이 곳에 내놓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동네가 깨끗해지는 모습이 좋아 새벽 2시면 기상한다. 덕분에 건강도 좋아졌다고.
4시 35분. 환경미화원과 동네주민이 함께하는 살가운 청소가 끝나고 지동초등학교 앞에 다다르자 정씨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차된 차량 때문에 청소차가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차량 사이사이로 오가며 쓰레기 봉투들을 치운 지 1분여. 비좁은 골목 사이로 트럭 한대가 다가오자 윤씨와 정씨는 이내 교통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라이~ 오라이~” 70년대 버스안내양의 나긋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청소차 앞 뒤에서 ‘오라이’를 연발하는 윤씨와 정씨 덕분에 트럭은 금세 갈 길을 찾았고 청소차는 다시 압축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주차 차량들과 씨름하고 순간순간 교통정리도 해야 하며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된 쓰레기 때문에 골치를 앓는 등 환경미화원의 업무가 어렵고 고되지만 이들을 더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은 사회의 편견과 무시다. 힘들게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눈 앞에다 냄새난다는 듯 멀리서 쓰레기를 툭 던지고 가는 주민을 볼 때, 술에 취해 자신들을 무시하는 취객들을 대할 때면 직업에 대한 후회가 한없이 밀려오기도 한다.
정씨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무시당하는 것 같아 속으로 많이 울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당당하다.
수십t의 쓰레기를 말끔히 치운 거리를 보면 마음속에 쌓였던 응어리도 함께 치워지고 ‘고생한다’며 다가와 음료수를 내놓는 주민들을 보면 지친 어깨에 다시 힘이 들어가곤 한다.
운전석에서 윤씨와 정씨가 다치지 않을까 계속 백밀러를 지켜보던 이씨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다 보니 새벽 공기가 익숙하다”며 “여름에는 냄새가 진동하고 겨울에는 칼바람에 손이 얼어도 웃음을 잃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저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임성준기자 sjli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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