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지’(宮闕志)는 조선 왕조의 궁궐에 관해 수록한 책으로 순조 때 편찬됐다. 이에 의하면 경복궁에 28개의 뒷간이 있었다.
임금은 뒷간에 가지 않고 이동용 좌변기를 썼다. 매화틀이다. 복이나인(僕伊內人)은 매화틀을 도맡는 나인이다. 임금이 일을 마치면 그것을 들고 내의원으로 간다. 내의원에선 매화틀속 배설물을 검사하여 임금의 건강 상태를 살피곤 했다. 하지만 궁궐에는 임금 말고도 많은 사람이 살므로 뒷간을 두었던 것이다.
지금은 화장실이라고 하지만 원래의 우리 말로는 뒷간이다. 아낙네의 안뒷간, 남정네의 밖뒷간이 있었다. 한문식 우리 말로는 측간(?間)이라고 했다. 한문의 ‘?’은 뒷간 측자다. 절에서는 해우소(解憂所)라고 한다. 걱정을 해결한다는 뜻이다.
화장실이란 말 말고 변소(便所)라고도 하는데 일본말로 이도 일제 잔재다. 일본 발음으로는 ‘벤쇼’다. 대·소변이란 말은 ‘다이벤’ ‘소벤’으로 이 역시 ‘벤쇼’에서 유래됐다.
뒷간이란 말이 어떻게 화장실로 바뀐진 잘 알 수 없으나 일본은 지금도 ‘벤쇼’란 말을 쓴다. 그들에게 ‘화장실’이라고 해서는 알아듣지 못한다. 아마 영어의 레스트 룸(rest room) 같은 어의로 쓰기 시작한 것이 화장실로 보편화되지 않았는가 하고 짐작된다.
‘측간하고 처가집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처가집도 가까울수록 좋은 것 같고, 측간은 수세식 좌변기가 되어 아예 집안에 붙어 있다. 그런데 이밖의 측간으로 공중화장실이 또 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공중화장실은 시민사회의 의식 수준을 나타낸다. 지저분한 곳일수록 깨끗이 쓸 줄 아는 것이 수준 높은 시민사회인 것이다. 우리의 공중화장실 문화가 일본의 공중변소나 서구의 공중화장실인 레스트 룸 문화보다 더 낫다 할 수는 없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은 그렇다.
얼마전에 외국사절들이 수원의 광교산 ‘반딧불이’ 등 공중화장실을 둘러보고 감탄했다는 말을 듣고 싫지는 않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우리의 공중화장실이 다 ‘반딧불이’ 공중화장실처럼 거액을 들여 짓고, 많은 인건비를 들여가며 전문관리케 하는 것은 아니다.
남이 더럽혔어도 나는 깨끗이 쓰겠다는 마음 가짐이 시민사회의 성숙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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