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가 타결되었다. 이번에도 칠레와의 FTA에서처럼 농업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무슨 피해를 누가 얼마나 감당해야 할 것인지는 아직 그의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아서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양자간 협상인 FTA는 물론 다자간 협상인 WTO의 DDA협상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개방화는, 한·미 FTA 타결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교통·통신 등 끊임없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교류는 잦아졌고 세계는 갈수록 좁아져왔다. 그리고 세계는 끊임없이 가까워졌고 시장도 쉬지 않고 넓혀져 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채택된 새로운 교역질서인 GATT 체제에서 UR을 거쳐서 WTO 체제에 이르는 과정도 세계가 하나로 묶여가는 과정이었고, FTA도 한 나라에서 두 나라로 그의 시장이 넓어지는 과정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 나라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어느 한 나라나 세력이 멈추게 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국가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적극적이고 공세(攻勢)적인 입장과 수세(守勢)적이고 수동적인 입장이 서로 맞서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에 대해서는 수세적이고, 약소국에 대해서는 공세적, 또는 우리가 앞선 분야에서는 공세적이고, 뒤떨어진 분야에서는 수세적이다. 여기서 수세적이라는 말은 세계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냐!”, “북한처럼 고립되어야 한다는 말이냐!”, “세계로 나가지 않고도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내놔라!”고 외쳐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사람들은 농업인들을 포함하여, “조금 천천히”를 주장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농업인들에게,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52조원은 어디로 갔느냐!”, “또 밑빠진 독에 물을 부으라는 것이냐!”, “농업보호는 불가침의 영역인가!”라는 등의 비난을 쏟아붓는 것을 보면, 우리 주변에 외눈박이 전문가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UR 협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1989년 농산물에 대한 수입개방이 크게 확대되면서 투입된 52조원의 국민세금은, 비닐하우스 짓고, 온실 짓고, 축사 짓고, 농기계도 사서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사시사철 큰 부족함이 없이 풍부한 농산물을 비교적 싼 값으로 공급함으로써 그의 대가를 거의 다 국민들에게 되돌려주었고, 그렇게 갖추게 된 새로운 생산기반과 축적한 기술로 1997년의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보태기도 했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를 그 정도에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농업이 버티어 주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그래도 우리가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우리 농업이었고(그렇지 못했던 인도네시아는 약탈과 폭동을 경험했음), 직장에서 고향인 농촌으로 되돌아온 많은 이들이 다시 기회를 잡을 때까지 굶기지 않고 보살펴주었다. 농업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충격들을 흡수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기업인들은 대부분 수익을 극대화하고, 많은 기업들이 그 수익으로 세계 각지로 진출하여 공장도 짓고 해외지사도 만들기 위해서 번 돈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만, 우리나라 농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족경영 농가들은 행복 극대화를 위하여 소득을 얻고, 웬만하면 본인이 필요한 만큼만 벌고 그 이상은 남들과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농업은 스스로 조금 어렵더라도 잘 참고, 이웃과 나누고 사회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우리 사회의 어머니와 같이 소중한 것이다. 우리보다 선진국으로 알려진 나라들 중에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농업을 시장에만 맞기고 있는 나라는 아직 하나도 없다. 또한 DDA협상이 지지부진한 것도 결국은 자국 농민들에 대한 ‘농업보조금’을 줄이지 않으려는 선진국들과 그렇지 못한 국가들간의 입장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전문가들도 없다.
/이 영 석 국립 한국농업대학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