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용어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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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를 중심으로 한 35명의 학자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논쟁적 용어들을 되짚는 책 ‘역사용어 바로쓰기’를 냈다. 이들은 잘못된 역사용어를 바로 잡을 것을 적극 제안했다. ‘삼국시대’ 대신 고구려·백제·신라·가야를 시야에 올리는 ‘사국시대’가 올바르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김태식 홍익대 교수는 “흔히 ‘삼국시대’로 불리는 기원전 1세기부터 668년까지 대부분의 시기에 ‘사국’이 함께 했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은 ‘한국전쟁’, ‘통일신라시대’는 ‘남북국시대’, ‘신사유람단’은 ‘1881년 일본시찰단’, ‘한일합방조약’은 ‘한국병합늑약’ 등으로 쓰자는 제안이 뒤를 잇는다.

이유와 근거는 다양하다. 대체적인 뜻이 역사의 한 측면만 강조해온 식민사관·반공사관 등의 잔재 극복이다. 이념적 편견 없이 역사적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역사용어부터 바로잡자는 이야기다.

혼용·혼재돼 쓰이고 있는 여러 역사용어의 차이를 짚어 설명한 건 ‘의사’와 ‘열사’다. 성리학적 의리관이 담긴 ‘의열지사’에서 비롯된 두 단어는 애초 뚜렷한 구분 없이 쓰이다가, 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을 ‘열사’로 부르는 쪽으로 변모했다.

‘납북’과 ‘월북’은 구분하면서도 ‘납남’이라는 용어 없이 모든 경우를 ‘월남’이라 표현하는 역사 인식의 공백도 지적됐다. ‘월북자’를 배신자, 빨갱이로 몰고, 남쪽으로 넘어온 사람은 모두 자발적 월남자로 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던 조선인 여성을 한때 ‘정신대’로 일컬었다가 지금은 ‘위안부’라고 한다. 정신대라는 용어는 강제노동에 동원된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이다. 즐거움을 준다는 뜻의 위안부는 군국주의 일본과 남성 중심적 표현이다. 홑따옴표는 위안부 노릇을 강요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는 장치다. 그러나 위안부도 적합하지 않다. 누가 누구를 위안했다는 말인가. 정신대, 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진실을 호도하려고 만들어 낸 완곡어법이다. ‘성노예’가 맞다. 앞으론 ‘성노예’로 써야 한다. ‘8·15 광복’을 아직도 ‘8·15 해방’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광복절’을 ‘해방절’이라고 부르지 않는 게 다행이다. 역사용어 바로잡기도 과거 청산 작업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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