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기담’ ‘아름다움 속 도사린 공포’ 와 만나다

현재와 가까운 과거일수록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힘들다. 1940년대가 주로 일제 강점과 독립투쟁의 소재로 소비돼왔던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다양한 시대적 변주는 늘 새로운 소재를 찾는 제작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고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돼 왔다. 하지만 닫혀 있던 역사관과 선입견을 조금만 틀어 보면,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린 것처럼 흥미진진한 사건(소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잠시 시계추를 1942년 경성으로 돌려보자. 당시 경성은 전쟁의 포화와 신문물의 마구잡이식 유입이 절정을 이루며 '현대화'에 대한 무모한 경외와 혼란의 공존이 기묘함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또한 태극기를 품은 열사나 청산유수를 벗삼아 지내는 소시민이 전부일 거라 생각한 그곳에서도 애정의 도피 행각이나 낭만에 취한 청춘, 흉악한 살인 등 생각지도 못한 사건과 스캔들이 들끓었다.

자신의 간통을 숨기기 위해 조선인 하녀를 살해한 일본 간부 부인,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갓난 아기의 뇌수를 먹은 남자 등(경성기담-전봉관 중 발췌) 당시의 또 다른 사회상을 조명한 이야기들은 이를 증명하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화 '기담'은 바로 42년 경성 최고의 서양식 병원인 안생병원을 무대로 사랑과 죽음의 공포를 포개낸다.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증폭되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새로운 질감의 공포로 형상화한 것이다. 영화의 우선순위가 '고증'이었다고 말할 만큼 '기담'은 시대를 주요한 무대로 삼는다.

지난 17일 경기도 남양주 종합 세트장. 이곳에 섬뜩하지만 매혹적인 공포의 무대인 안생병원 세트장이 마련돼 있다. 영화의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안생병원은 700여평 규모로 1년여간의 프리 프로덕션을 통해 탄생됐다. 이날 촬영은 난도질당한 채 발견된 일본군 시체를 부검하는 장면.

높은 천장과 타일로 촘촘히 메워져 있는 단조로운 공간이 음산함을 더하는 해부실. 굳게 닫힌 창문을 뚫고 비쳐지는 햇빛이 해부대 위에 누워있는 남자의 시체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세 사람. 동경 유학 중 안생병원에 부임한 인영(김보경)과 보조역인 의대 실습생 정남(진구), 그리고 두 사람에게 부검을 의뢰한 아카야마 소좌(김응수)다.

비명이나 핏빛

공포가 주는 말초적 자극 대신 '기담'은 '아름다움 속 도사린 공포'로 감정의 극적 대비를 불러일으킨다. 원장 딸과의 정략 결혼으로 편안한 생활을 보장받았지만 점점 숨이 막혀오는 의대 실습생,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엘리트 의사 부부에게 숨겨진 충격적 비밀, 사랑하는 엄마에 멋진 새아빠까지 갖게 된 10세 소녀의 끔찍한 악몽이 아름답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과 섬뜩함을 선사하는 것.

연출을 맡은 정가 형제는 "기존 호러물에서 한 차원 다른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며 "비명이 아닌 감정으로 볼 수 있는 공포 영화, 기묘함과 아름다움, 공포와 슬픔, 서스펜스와 사랑이 공존하는 풍부하고 윤택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기담'은 무엇보다 철저한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통해, 보는 이를 현혹할 만큼 마력 넘치는 볼거리를 완성해 낸다. 안생병원이 지어진 양수리 세트장을 중심으로 인영과 동원의 집, 일본 병원의 수술실과 박 교수의 집이 구현된 덕소 세트, 청태산의 피막 오픈세트와 부천의 화신백화점 세트 등 공간들이 들어선 별도 스튜디오를 합쳐 총 1천300평 이상의 세트 규모를 자랑한다.

"한 번도 보여진 적 없는 오묘한 시대였기에 내가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싶었고, 당시에 찍은 영화들은 물론 외국 영화 속 여자 캐릭터들의 말씨, 제스처 등을 연구했다"는 김보경은 사랑하면서 처절한 공포에 떠는 신비스러운 여인 김인영 역을 맡았다. 그녀는 특히 "음향과 놀래키는 공포가 아닌 사랑과 시대를 품은 '기담'의 공포가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신인에게 볼 수 없었던 진중한 무게감으로 주목을 받아온 진구는 기존의 남성적인 이미지를 탈피, 내성적이고 유약한 성격의 2년차 의대 실습생 박진혁 역으로 분했다. 그는 "완벽한 시대 고증 속 신비한 매력에 이끌렸고 특별한 영화가 나오리라 기대한다"며 '기담'을 "기력이 없고 담력이 약해도 볼 수 있는 영화, 공포보다는 슬픔이 있고 슬프기 때문에 무서운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밖에 존경받는 유능한 의사이자, 인영의 자상한 남편 김동원 역에 김태우, 병원의 궂은 일을 도맡는 노력파 전문의 이수인 역은 이동규가 각각 맡아 열연 중이다. 현재 70%가량 촬영이 진행 중인 '기담'은 8월2일 개봉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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