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은줄 모르는 휘발유 가격

임 덕 호 한양대 경상대학장
기자페이지

요즈음 휘발유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불평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17주 연속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쇄도하자 정부부처에서도 나름대로 대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자원부는 휘발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판매 가격의 절반이 훨씬 넘는 세금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조세수입의 감소를 우려하는 재정경제부는 공장도 가격을 낮출 것을 주문한다. 최근 들려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정부는 석유제품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수입 석유제품이 국내 유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아 가격 인하 효과는 별로 크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환율이 상승할 때마다 환차손에 따른 수입가격 상승분을 휘발유 가격에 재빨리 전가하던 정유사들이 환율이 하락할 때는 미적거리기 일쑤다. 유가 상승과 환율 하락으로 정유사들의 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보도도 자주 접한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휘발유 판매 가격 중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장도 가격을 낮추는 데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의 휘발유 판매가격이 다섯 번째로 비싸고 국민소득 대비 휘발유 가격을 비교할 때는 가장 비싼 것을 감안하면 재정경제부도 조세수입 감소타령만 늘어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부가 휘발유 가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자동차를 더 이상 소비재나 사치재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는 주로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고 영업활동에도 직접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재보다는 오히려 생산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목전에 둔 우리나라 경제수준과 대다수의 가계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자동차는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필수품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휘발유 가격이 올라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민소득이 증가할수록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큰 폭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자동차 보급 대수의 증가에 맞춰 휘발유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이 또한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해 장기적으로 휘발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요인이다. 더욱이 휘발유시장에는 휘발유를 대체할만한 경쟁 관계에 있는 대체재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소비자들은 휘발유 가격의 변화에 대처할만한 별다른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휘발유시장의 이러한 특성이 바로 정부의 각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정부부처 간 자기 영역 싸움만 하고 있는 사이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휘발유를 넣어야 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말 그대로 ‘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다수의 국가들이 우리나라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휘발유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동차는 매연과 같은 대기오염을 발생시키고 도로를 파손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운행을 자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 나아가 도로와 같은 공공재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건설하는데, 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더 많은 사용료를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적 배경도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우리 소비자들이 바라는 것은 소득수준 대비 감내할 정도의 가격수준을 유지해달라는 것이지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낮춰달라는 것은 아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소비자들이 납득할만한 휘발유 가격 안정 대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할 것이다.

/임 덕 호 한양대 경상대학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