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다시피 오늘날 우리나라 중등학교는 전인교육이란 말이 무색하게 입시중심의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따라서 입시에서 중요시 되는 국어·영어·수학 등은 중심교과로 운영되며 이와 달리 예체능교과는 기타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는 형편이다.
필자는 과거 오랫동안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미술’은 다행히 보충수업과 문제집에 치중하는 국·영·수 과목에 비해 다소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수업이 가능한 교과이다. 그래서 비록 기타 과목으로 인식되고 있을망정 아이들에게는 즐겁고 재미있는 수업이 되도록 나름대로 애썼다.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자화상을 그리게 했고, 좋아하는 시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퍼포먼스, 설치미술, 영화 만들기 등으로 수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미술시간은 늘 시끄럽고 부산했다. 그들끼리의 소통과 협업과 자율성이 나름대로 보장됐기 때문이다. 그러한 수업을 하면서 필자는 궁극적으로 미술교과의 평가제도란 사실 불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미술교육은 상상력의 발현과 체험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규격화한 평가의 대상이 돼선 곤란하다는 생각이었다. 평가로 인해 아이들은 그 기준에 맞춘 형식과 내용, 완성도를 의식하게 되고 예술교육의 생명이라 할 자율성과 상상력의 학습이 오히려 경직되고 제한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과 판단을 공론화하거나 개선을 요구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이상적인 교과운영에 앞서 오늘날 절대적인 입시중심의 교육현실은 내신을 위한 평가가 전제되지 않을 때 파행적인 운영의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얼마 전 중·고교 음악·미술·체육 평가 기록방식을 바꾸는 ‘체육·예술 교육 내실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2009학년부터 시행될 새 방안은 현재 중학교의 수·우·미·양·가 5단계 절대등급과 전교 석차, 고등학교의 9단계 상대등급의 평가를 폐지하고 우수·보통·미흡의 3단계 절대등급으로 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평가방식 전환의 이유로는 예체능 교과 특성상 학생들의 실력을 점수로 측정해 서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 학습부담의 감소, 내신 평가로 인한 사교육비 과다지출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교사들은 평가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곧 예체능을 내신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교과 붕괴를 뜻하며, 지금도 예체능 수업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인데 평가방법까지 바뀌면 수업 파행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개선안이 강행되면 국·영·수 편중으로 공교육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시민문화단체들도 이에 동의한다. 문화연대는 이번 변경안이 예체능 교육의 몰락을 초래하고 문화교육의 쇠퇴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교사들의 주장이 옳다. 우리나라 교육이 입시중심에서 변화하지 않는 한 새로운 평가 변경안은 오히려 예술교육의 파행과 퇴행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전인교육은 고사하고 당장 입시와 내신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을 학교와 학생이 새삼 중요시 여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동안 우리의 학교현장이 보여준 태도로 미루어 볼 때 미술시간을 영어수업으로 대체하고, 음악수업을 윤리교사가 ‘때우며’ 아예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잠이나 자는 학생이 더 늘어날 수도 있으리라는 예측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파행의 주체가 결코 학교장이나 교사, 학생이 아니라는 점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원인은 단 하나. 현재의 절대적인 입시중심교육의 우상과 망령 앞에서 어떠한 개선책이나 자율성도 모두 무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부의 안이 강행된다면 예체능 교과운영의 파행과 예술교육의 저하는 지금보다 더 심각해 질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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