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상품과 서비스를 배분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전시라든가 혹은 경제 위기와 같은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 정부가 직접 가격을 통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직·간접적인 가격규제정책이 자주 이용되어 왔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을 때 주요 공산품들의 가격을 직접 통제하거나 농가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농산물 가격 지지정책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아파트 분양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분양가를 규제하기도 하고 최저생계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기도 한다.
오는 9월부터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설정하는 규제가격을 적용받는다. 예를 들면 어느 지역에서 아파트 실거래가격이 평당 1,00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신규분양 아파트는 주변시세의 75%인 750만원에 분양하도록 분양가를 강제로 규제한다는 것이다. 아파트 분양가 규제는 강제로 분양가를 인하함으로써 그동안 비싼 가격 때문에 소비에서 배제되었던 저소득층들도 소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아파트 분양가 규제로 인해 파생하는 문제점들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자원배분상의 문제를 예상할 수 있다. 아파트 분양가를 강제로 규제할 경우 기업의 이윤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주택업체들이 공급량을 줄이거나 일부 업체는 아파트 건설을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아파트 분양가 규제는 장기적으로 아파트의 공급 물량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정부의 분양가 규제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분양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공급은 감소하므로 초과수요가 발생한다. 따라서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나타나는 부족한 새 아파트를 어떤 방식으로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첨 방식을 적용해 왔다. 이와 같은 추첨 방식은 당첨만 되면 하루 아침에 수억원이나 하는 불로소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실수요자뿐만 아니라 가수요자, 즉 소위 말하는 투기꾼들을 불러들여 아파트 분양시장을 과열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9월부터는 가능한 한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청약 가점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정책이 정부의 기대대로 소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두 번째 문제는 아파트의 품질 저하를 들 수 있다. 주택업체가 아무리 좋은 아파트를 짓더라도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윤을 추구하는 주택업체의 최대 관심사는 공사비 절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값싼 자재를 사용하고 공사 기간의 무리한 단축으로 부실시공 아파트를 양산할 수 있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실체도 없는 아파트를 미리 분양하는 선분양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부실의 가능성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치솟기만 하는 아파트 가격을 붙들고 서민들의 내집마련 기회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아파트 분양가를 규제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1997년까지 경험했던 아파트 분양가 규제의 폐해가 그대로 재현될까 걱정스러워 하는 말이다. 정부는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분양가 규제를 앞두고 정책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점검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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