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정의 영국 엿보기
대통령제의 전형인 미국과는 달리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상징적으로 군주가 국가를 대표하지만 실질적인 국가 경영은 행정부의 수장인 수상(Prime Minister)이 담당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독재체제가 자리 잡을 일이 없고 장기 집권이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권에서도 간혹 의원내각제, 또는 내각책임제로 이행하자는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 의원내각제로서는 최고의 모범을 보이는 영국에서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테러와의 전쟁에서 공조를 이루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토니 블레어 수상이 재임 10년 만에 물러나고 오랫동안 후계자로 거론된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수상이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수상 관저 다우닝가 10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전혀 의외의 새로운 인물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차기 수상으로 예측돼 왔고 세계 무대에 널리 알려져 있어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든 브라운 수상의 새로운 영국호에 대해 파악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브라운 수상은 전임 블레어 수상이 쌓아 온 영국 노동당(Labour Party)의 ‘새로운 노동당 정신(New Labourism)’을 충실하게 이어갈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당이 추구하는 정책은 시장경제 보다는 사회복지에 중점을 두다 보니 경제발전이나 성장 보다는 분배에 관심을 두게 돼 결국은 물가 상승과 고용 하락 등의 악순환을 가져 와 대부분의 경우에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브라운 수상은 블레어 수상과 연속적으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최장기 재무장관으로 경제 성장을 주도한 직접적인 경험을 갖고 있어 경제에 관해 호화찬란한 구두선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 줬다. 지난 세기 이후에 노동당 집권으로 가장 장수를 기록한 것을 이어 받아 브라운 수상체제에서도 합리적 사고와 판단, 그리고 결단 등으로 21세기 영국호를 이끌어 갈 것이다.
둘째로 최장수 재무장관 경험을 살려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시각에서 해결할 수많은 과제들에 대해 활발한 역할을 기대해 본다. 세계 도처에서 자유와 평화에 최대 위협 요인이 된 주요 이슬람 출신 테러범들의 무자비한 살상문제, 환경문제로 지구 재앙거리인 온난화 문제, 최빈국인 제3세계의 경제적 기아문제, 종교적 민족 갈등으로 인한 국지적 분쟁, AIDS 문제 등 인류 세계는 쉴 틈도 없이 문제의 연속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영국의 수장인 브라운 수상은 영국적 관용과 이해의 정신으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해결해 나갈 것이다.
셋째로 브라운 수상은 미국의 부시와 밀착된 공조를 이어 가겠지만 블레어 수상 보다는 조금은 더 차분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초적으로 영국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촉발된 이라크 전쟁을 교훈 삼아 보다 성숙된 지도력으로 무력으로 응징하는 것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글라스고 공항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과 런던 중심가에서 발견된 폭탄 탑재 차량 등에서 볼 수 있듯, 브라운 수상은 테러에 조금이라도 유화적 인상을 풍겨서는 안되며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
넷째로 브라운 수상은 정통 스코틀랜드 출신 정치인으로 행정부 최고 지위까지 올라갔다. 영국의 여러 요소 가운데 부러운 점 하나가 국가에 관계없이 정치적 편견이 없다는 점에 고개가 숙여진다. 바로 이같은 점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브라운 재무장관의 수상 등극이다.
브라운 수상은 역대 수상 가운데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이 아닌 몇 되지 않는 가운데 하나지만 합리적 사고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특히 스코틀랜드의 반란 등 여러 미묘한 문제를 치유해 가는 데 손색이 없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브라운 수상은 사라와 늦게 결혼해 지난 2002년 초 딸 제니퍼를 낳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잃는 슬픔을 겪었다. 브라운 수상 부부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들이 세상을 다시 보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당시 블레어 수상과 세리 부부도 브라운 재무장관 부부가 스코틀랜드에 기거하고 있는 곳에 급히 달려가 위로하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와 닿는다. 철저하게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풍조에서 자신들의 최대 인생 역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게 보내는 가운데 절친한 동반자인 블레어 수상 부부와 어려움을 같이 하는 인간미 넘치는 장면에 잔잔한 감동을 받은 일이 있다.
이제 새로운 영국호 선장으로서 막중한 책무를 맡은 브라운 수상이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야당인 보수당과 데이빗 카메론 당수에 비해 상당한 차이로 호응을 얻었다. 이런 점은 미국이나 일본, 심지어 우리나라도 집권 초기에 설레는 기대심과 호기심 등의 대중적 인기를 냉철하게 파악해 현재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안주할 게 아니라 비전적인 제시를 통해 분명하고 확고한 지도력을 발휘, 영국 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는 지도자로 거듭 날 것을 기대해 본다.
/국가보훈처 복지사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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