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해균의 세계여행 스케치
여행은 지친 삶을 위로하고, 일상의 삶이 아닌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이다. 그래서 휴가철이나 며칠 동안의 말미를 얻어 떠나는 여행은 재충전을 기약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것이 국내가 아닌 국외인 경우 그 경험치는 배가될 것이다.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목도하고, 익숙했던 자국의 문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돌이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화가 이해균(49·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은 10여년 동안 30개국을 여행했다. 그것도 잘 알려진 관광명소가 아닌 고산지대나 사막 같은 오지들을 주로 답사했다. 이 정도 되면 화가인 동시에 오지답사 전문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듯 하다.
그는 왜 오지를 선택했을까. “여행은 내가 지닌 예술의 한 분야이며 오지에서는 가공되지 않은 색과 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렬한 색에 이끌려 그가 찾은 세계 여러나라 모습들을 현장에서 스케치한다. 연필선으로 쓱쓱 자연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이 오롯이 담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전원주택이란 것을 만들어 또 다른 정주를 약속받는다. 물 맑고 인적이 드문 전원주택의 삶은 낭만적이다. 비록 그곳이 쾌적한 자연환경을 담보해 주지만, 자연을 일구며 주변 사람들과 동화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의 오지들을 다니며 무엇을 느꼈을까. “오지 여행은 주로 문화유적지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스케줄을 잡아요 어느 나라든 오지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고 새로운 문화충격을 선사하죠.”
그래서 첫 여행지를 다시 찾는 경우도 많다. 둔황을 수차례 갔지만, 미처 글을 쓸 수 없었다. 스쳐 지나간 유적들을 마주하며 갖가지 상념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곳보다는 그 주변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그만의 독특한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남미와 중국 실크로드 일부인 신장 위그루 자치구 카슈 등을 다녀왔죠.”
그는 홀로 여행한다. 여행사가 배낭족을 위해 마련한 패키지 프로그램들을 주로 이용한다. “일정에 맞추다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동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혼자 여행하죠. 처음부터 목적을 갖고 출발하지 않아요. 또 카메라를 갖고 가지만 자꾸 사진만 찍게 돼 세세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목표 없는 여행. 한가지 목표를 갖지 않는 건 그 이외의 것을 현장에서 얻으려는 그의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수원에서 화방을 운영하는 그는 간혹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적은 경비로 이동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1개월 정도 소요되는 여행을 선뜻 나설 수 있는 건 가족들의 후원 덕분이다.
“화방에서 멍허니 앉아 있으면, 아내가 그러지 말고 여행 다녀오라고 독촉해요.”
행복한 여행가 이해균은 그렇게 세계의 오지를 다니며 느낀 경험을 글과 그림 등으로 남긴다.
볼리비아의 눈부신 소금사막과 티베트의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 수메르 문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페트라….
여행은 예기치 못한 상황과도 직면한다. 페루에서 소매치기를 당했고 아프리카 나이로비에선 기념품을 사라는 호객꾼에게 이끌려 봉변을 겪기도 했다.
“나이로비에 갔을 때 시장골목 기념품점이 싸다며 유혹하는 호객꾼을 따라갈 쯤 골목길 여기저기서 이상한 인기척이 났어요. 아니다 싶어 미리 봐둔 길로 냅다 뛰었죠.”
이러한 경험들은 지난해 한권의 책으로 엮였다. ‘수미산 너머 그리운 잔지바르’(다빈치 기프트 刊)는 2002~2004년 중국과 티베트,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케냐, 탄자니아 등을 여행한 기록물이다. 원고는 경기일보에 1년 동안 연재했던 ‘이해균의 세계여행스케치’를 정리했고 현장에서 직접 그린 삽화들은 생동감이 넘친다.
이 책의 특징은 오지에 대한 경외감과 낯선 곳에 대한 경험치의 산물이 아니란 점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음식, 빨래 이야기 등이 일상을 살아보듯 생생했다”며 “지나친 고행도 아니고 무엇보다 다 깨달은듯 사연하지 않는데 믿음이 갔다”고 평했다.
이 책에 담긴 담담한 글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화가의 눈에 비친 삶의 풍경은 동감, 내지 감동으로 가다온다. 원색의 강렬한 삽화를 보는 재미도 그렇지만, 20여편의 시편들도 눈길을 끈다.
말년에 더욱 재밌는 여행을 위해 요즘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그는 2번째 책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다음 책에는 남미와 실크로드 등지를 중심으로 구성할 계획이죠. 출간과 함께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개인전도 마련할 것입니다.”
“여행에서의 외로움은 나의 최대 수확”이라고 말하는 이해균. 비좁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이방인으로 복잡한 상념이 교차했을 것이다. 작가로서 그가 추구해야 하는 예술적 결과물에는 치밀한 고독들이 선사한 자기성찰이 담겨져 있다.
“페루의 장례식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옷을 입은 채 뚜껑도 없이 시체를 보관하더군요. 정말 소름끼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것. 예술작품의 탄생과 소멸. 이해균이 바라본 세상살이가 고스란히 작품을 통해 투영되는 과정은 즐겁지만 가볍지 않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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