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도 들뜬다는 여름 바캉스가 시작된 파리. 바겐세일도 끝물인 8월 초의 파리는 역들마다 바캉스를 떠나는 무리로 북적댄다.
리용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조카 ‘레아’가 아이슬란드로 바캉스를 떠나기 전에 파리 필자의 집에 며칠 묵으러 왔다. 레아는 짐을 풀자마자 첫날은 파리 북동부에 있는 빌레트 과학관을 찾았고, 그 다음날은 퐁피두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갔다. 레아의 관심사는 전공 이외에 현대 미술과 시네마, 과학 등 폭이 넓다. 필자의 집에는 그 흔한 TV가 없어도 우리 부부나 손님들이 불편한 적은 없다. “왜 집에 TV가 없느냐”고 묻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필자 부부는 알프스와 이탈리아로 바캉스를 떠나기 전에 오르세 미술관의 반 고흐 특별전을 감상한 후 모처럼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 파리 12구에 있는 벵센느 공원의 꽃동산에서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고 토요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펼쳐지는 공원 야외 클래식 콘서트 장소로 향했다. 쇼팽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드뷔시 곡의 연주를 듣기 위해 관객 1천여명이 이미 몰려 있었다. 태양 아래, 꽃 향기 그윽한 공원에서 시원한 여름 바람을 타고 쇼팽의 곡을 듣는다는 것은 진정 행복한 일이었다. 국제적 명성의 첼리스트 앙리와 피아니스트 브르짓뜨는 4번의 커튼 콜을 받았고 관객들은 열광했다.
또한 호수 주변의 잔디 위에는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의 무리로 가득했다. 그들의 자리에는 샴페인과 와인, 치즈, 장봉, 샐러드, 바게트 등이 풍성했고 누워서 선탠을 즐기거나 곤한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있는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없어 보였다.
이와 같이 프랑스 휴가문화는 문화생활이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든 삶의 한 부분이며 라이프 스타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어느 공연이든지 남녀노소가 같이 즐긴다는 점이 인상적이며 미술관, 연극, 콘서트 등에 가 보면 노년 인구가 관객들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놀라곤 한다. 70대 후반인 필자의 시어머니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보다도 한발 앞서 한국 영화를 감상하고 전시에 다녀오셔서 40대 중반의 며느리 기를 죽이 실 때가 종종 있다. 어디 그뿐인가? 신간 소설을 두루 보시고 여러모로 부족한 며느리에게 선물까지 하신다.
프랑스의 휴가는 여러 장소를 찾아가는 깃발여행이 아니라, 대부분 한 장소를 선택해 자연 속에서 장기간 머물고 책을 읽으며 심신을 충분히 쉬게 하는 여행이다. 경우에 따라서 휴가를 집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프랑스 내 다른 지역이나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들이 많다.
보통 한달이 넘는 여름휴가에서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우편함에서 지인들이 휴가 장소에서 써 보낸 엽서를 발견하게 된다. 대개 다섯 줄 정도의 짧은 글이지만 엽서를 받는 순간, 많은 정감이 순식간에 오가게 된다. 그 내용은 대개 여행지 미술관이나 해변가 풍경, 이국적인 낯 설음 등이 간단히 묘사돼 있다.
지난 6일, 여름비 내리는 아침에 필자는 현재 스위스 취리히에 머물고 있는 콜랙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콜랙터는 70대 후반으로 남불의 큰 성에서 10년째 살고 있으나 2년 전부터 건강에 적신호가 생겨 스위스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녀는 이제 남불의 성을 팔고 취리히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자 했다. 즉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그 동안 소장했던 필자 부부의 작품들을 프랑스 미술관에 기부하는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 필자는 콜랙터의 신중한 배려와 고귀한 정신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의 하늘밑이 특별한 이유는 이러한 정신이 생활처럼 숨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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