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미친과학자’를 만드는가?
의대생 이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인체 해부는 사실 좀 오싹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 나와 마찬가지로 웃고 울고 했던 누군가의 몸을 가르는 것이 기분 좋을 리는 없다. 의학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여전히 거리낌이 남는다. 이런 거리낌에서 출발하는 <해부학교실> 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공포를 보여줄 만한 이야기다. 의대라면 능히 떠돌만한 괴담, 밤늦게 홀로 해부를 하던 의대생에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를 끈다.
의대 본과에 올라간 선화는 은주, 기범 등과 같은 해부학 실습 팀이다. 그들에게 배정된 카데바(해부용 시체)는 젊고 예쁜 여성이다. 그런데 첫 실습을 마친 날 밤부터 선화는 외눈에 다리를 저는 의사와 살아난 시체가 등장하는 꿈을 꾸게 된다. 어느 날 선화의 룸메이트인 은주가 해부학교실에 갇혀 심장이 도려난 시체로 발견되고, 선화의 팀원들 모두가 동일한 꿈을 꾸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주인공인 선화의 과거에 얽힌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국 공포영화들의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 죽은 이의 얼굴을 복원하는 이야기 <페이스> 나 같은 시각에 아파트의 불이 일제히 꺼진다는 설정의 <아파트> 등은 충분히 매력적인 공포영화가 될 수 있다. <해부학교실> 도 시작은 나쁘지 않다. 죽은 시체가 되살아나 움직이고, 뭔가 원한을 풀기 위해 꿈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오싹해진다. 그러나 <해부학교실> 은 먼먼 길을 돌아간다. 일단 대부분의 공포영화나 미스터리가 그렇듯 과거로 향한다. 해부학을 강의하는 교수 지우는 뭔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비밀이 아니라 병원 전체에 얽힌 어두운 과거다. 선화에게도 비밀이 있다. 선화의 아버지는 아내를 죽이고, 지금 정신병원에 있다. 그들은 모두 어두운 과거에 얽매여, 현재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모두에게 과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해부학교실> 은 단절된 과거들을 깔끔하게 이어주는 데 실패한다.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기는커녕 너무나 진부하고 늘어진다. 공포에서 원인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래서 지금 어떤 무서운 것이 존재하는가이다. 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아파트> 페이스>
해부학 교실의 서늘한 풍경 자체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씩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살해하는 방식을 보면 <해부학교실> 도 꽤 흥미롭게 보인다. 하늘에서 붉은 꽃잎이 날리다가 손바닥에 떨어져 핏물로 바뀌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유를 찾아가는 순간부터 <해부학교실> 은 말이 많아지고 안개 속을 헤맨다. 한마디로 말해 요령부득이다. 선화와 해부학 교수인 지우의 과거가 얽혀들기 시작하고 계속된 살인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꼬여만 간다. 문제는 꼬이는 이야기가 거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속 뭔가를 보여주기만 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적어도 사다코를 재탕하지는 않는다는 점만은 인정해줄 수 있다. 하지만 <해부학교실> 은 공포의 근원을 파고들기보다는, 무서운 장면을 몇 개 늘어놓고 뒤죽박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바람에 한없이 지루해진다. 귀신이 왜 그들을 죽여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대부분의 한국 공포영화들처럼 <해부학교실> 도 공포를 보여주기보다는, 그 원인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심오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과시하려고 애쓴다. 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그래서 <해부학교실> 은 별로 재미가 없다. 하지만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생각해볼 만한 것이 있다. 할리우드의 SF나 호러 영화에는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로 불리는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미친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사회적 금기를 깨거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과학자를 말한다. 전형적인 예는 <프랑켄슈타인> 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다. 그는 새로운 생명을 만들겠다면서 시체를 훔쳐와 생명체를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결국 생명체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 결과는 비극이었다. 연구 과정에서의 금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 결과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연구에만 몰두하는 과학자들도 간혹 ‘미친 과학자’라고 불리게 된다. 이를테면 군사무기나 생물학병기 등을 만들어내는 과학자들이 그런 경우다. 생체실험을 했던 일본의 731부대의 군의관들도 미친 과학자였다. 프랑켄슈타인> 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의 지우도 ‘미친 과학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지우는 인공 심장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라이벌인 다른 연구팀에서 더 앞서가고 있다는 정보를 얻자, 금기를 뛰어넘어 버린다. 병원에 들어온, 연고가 없는 여성 환자의 심장을 실험재료로 쓴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말리던 동료 의사까지도 실수로 죽여버린다. <해부학교실> 에 등장하는 원혼은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지우는 자신의 실험을 위해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고, 그 결과 다시 해부학교실에서 끔찍한 살인들이 벌어지게 된다. 앞뒤가 맞지는 않지만 어쨌건 <해부학교실> 은 그런 이야기다. 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해부학교실>
이 세상에서 <해부학교실> 같은 일은 자주 벌어진다. 귀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험을 위해서 타인을 희생시키는 경우 말이다. 특히 국가에서 벌어지는 실험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1950년대 미국의 네바다주에서는 많은 핵실험을 했다. 핵폭탄을 터트린 후 그 지역에 군인들을 투입하여 작전을 펼치게 한 실험도 있었다. 당시는 방사능에 대해 무지했기에 행한 실험이었지만, 그 결과 수많은 군인들이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방사능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1945년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진 후 그 후유증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분히 의도적인 실험이기도 했다. 해부학교실>
이렇듯 ‘미친 과학자’의 만행이 종종 저질러지는 이유는, 자신들의 연구가 대의 혹은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맹신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수를 희생해도 된다는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결국 미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다. <해부학교실> 의 지우 역시 한 사람을 희생하여 인공심장을 만들 수 있다면,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변명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극악한 실험이 선의의 의도로 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지우의 연구는 단지 자신의 명예를 위한 이기적인 행위였을 뿐이다. 대의는 자신의 부도덕과 이기심을 위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해부학교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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