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중화 이끄는 미술은행

이 종 구 중앙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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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가 미술은행(Art Bank)을 설립한지 3년째다. 미술은행은 정부 예산으로 미술품을 구입해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 작품들을 대여해주는 제도로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영국의 정부아트컬렉션(GAC), 프랑스 국립현대미술재단(Fnac), 독일의 국제교류처(IFA), 캐나다의 캐나다공영미술은행(CCAB)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미술은행은 크게 세 가지 목표를 두고 설립됐다. 미술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창작활동을 지원해주고, 국내 미술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며, 대여를 통해 국민들의 문화향수권 향상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목표 아래 지난 2년 반 동안 매년 23억원의 예산을 들여 현재 모두 1천92점의 작품들을 구입했다. 그간 50여억원의 작품 구입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작가들에게 최소한의 숨통을 틔는 역할을 했고, 화랑미술제 등을 통한 작품 구입으로 미술시장 활성화에도 다소 기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술은행의 긍정적인 역할은 미술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의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공공미술관, 지역의 문예회관 등에 구입한 작품들을 대여해줘 시민들에게 미술작품 감상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행은 그동안 1천500여점의 작품들을 대여한 바 있는데 전시를 했던 공공기관의 구성원이나 시민들을 통해 조사한 여론을 보면 사무실에 좋은 그림이 걸려 있어 근무환경이 좋아졌고 업무능률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는 의견이나 지방에서 수준 높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는 답변들이 많았다.

특히 보령시와 마산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매년 2~3차례 작품들을 대여받아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다른 지역의 문예회관들도 매년 정기적으로 대여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반응에 힘입어 미술은행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작품들을 구입, 적어도 오는 2010년까지 6천점 정도의 작품들을 소장할 계획이며, 차후 미술은행을 운영하는 별도의 재단을 설립해 운영의 전문성을 꾀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미술은행의 긍정적인 활동으로 몇몇 지방자치단체들도 미술은행 설립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해 인천문화재단이 미술은행 운영을 시작했고 광주광역시도 남도예술은행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이로써 미술은행은 출범 2년여의 짧은 기간에 공공기관, 시민, 작가들에게 좋은 평가와 반향을 얻으며 올바르게 정착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작품 컬렉션 방향에 지나치게 대중성을 강조하는 점이나, 투자한 예산과 작품 분량 등에 비해 작품의 수준이 결코 우수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젊은 작가와 생활이 어려운 전업 작가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추천위원이 추천한 작품들의 낮은 구입비율도 문제점이다. 대중성의 경우 대중의 미적 수준을 하향적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오히려 수준 높은 동 시대의 작품으로 대중의 안목과 미감을 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양질의 컬렉션을 위한 구입방법의 다양화와 보완 등도 필요하다. 현재의 작품 구입방식은 추천제, 공모제, 현장구입방식 등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추천위원의 인맥에 의존한 한정된 추천작가의 범위, 홍보 부족으로 인한 광범위한 작가층의 공모율 저조, 대중성이 두드러지는 미술시장의 현장구입제 등의 틈새에서 수준 높고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다수 소외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구입제도를 일부 참고해 볼 만하며, 추천위원의 복수추천을 통한 다수 추천자의 우대나 공공미술관의 학예연구사와 비평현장의 추천 등도 고려해 볼만하다.

무엇보다도 미술은행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더불어 장래 한국미술의 위상을 가늠하는 국가적 수준의 컬렉션을 해야 하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국민들의 문화향수권을 향상시키는 게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종 구 중앙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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