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존과 존중의 미학

황 평 우 문화연대문화유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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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명에 관한 호기심과 역마살의 옷을 입고 사는 필자에게 ‘문화와 문명의 교류(전파)’와 관련돼 서양 중심의 연구와 서술이 아닌 동양의 시각으로 접근하되, 국수적이지 않은 결과물은 없을까 라는 고민을 해결해준 책이 ‘실크로드학’을 비롯한 정수일 선생의 여러 저서들이다. 또한 그 기쁨을 배가해 주는 것은 저자와 함께 현장을 찾아보는 것이다.

며칠 전 정수일 선생과 2주일 동안 문명교류의 현장인 터키를 여러 도반들과 함께 탐사하는 호사를 누렸다. 한국 사람들이 터키를 여행할 때는 대부분 이스탄불을 비롯한 잘 알려진 서부지역에 집중되거나 일부 종교인들의 성지순례로 오지를 찾는 경향이 있으나 우리는 터키의 동부 디야르바키르와 하란 등지에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등의 두물머리에서 문명 발생의 고통과 흔적을 동시에 맛보는 행운을 얻었다.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한 도시 우르파, 거대한 호수의 도시 반, 노아의 방주로 알려진 만년설 아라라트산과 아나톨리아 루트로 알려진 앙카라, 하투샤, 카파토키아, 파묵칼레, 에페소서, 이즈미르, 이스탄불 등지를 탐사하며 핫티시대(BC 2,500년), 프리기아 시대(BC 850~300년), 알렉산더 대왕 시대(BC 334~30년), 로마의 진출(BC 133~AD 395년), 비잔틴제국 시대(AD 395~1453년), 오스만투르크제국 시대(AD 1281~1922년), 터키공화국 시대 등 짧은 기간 동안 강행군으로 동·서양 문명의 접점에서 실크로드를 통한 문명교류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필자는 역사의 폐허에서 한반도의 우리 문명과 청동기시대부터 고대국가 고구려와 조선을 대비시켜 보기도 했다.

또한 오늘날 이율배반적이게 분쟁의 씨앗이 되어버린 종교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민하며 이슬람은 관용과 포용이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류문화의 공존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며 신라를 비롯한 고대국가의 흔적에 다른 문명이 공존되고 있음에 비해 20세기를 지나며 한국에 전파된 종교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으며 욕심이 많고 도전적이고 호전적이고 ‘다름’에 대한 배려가 없음이 필자를 더 헐벗게 했다.

해넘이의 붉은 지중해 노천카페에서 정수일 선생에게 “1957년이면 20대인데 그때 지중해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문명사 공부를 하기 위해 카이로대학에 보내달라고 주은래에게 편지를 썼는데 받아줬어요. 장학생으로 왔고, 그때 아랍지역에는 조선 사람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는데 카이로에서 국제대회가 열렸고 북한의 한설야가 왔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고고학자인 도유호 선생이 영어통역으로 왔지.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아랍어 통역을 해줬어. 도유호 선생이 얼마나 좋아하시든지 말이야. 난 청년시절에 만국의 민중들이 공존하고 존중하며 사는 세상을 생각했어.”

터키여행을 하지 전에 필자는 터키여행의 감동을 경기일보를 통해 전달해드리고 싶었다. 경기도와 우리나라 문화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많이 했지만 지난 1년의 기고를 정리하며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한국에 돌아온 후 지금 경기도에 돌아가는 여러 현상들은 그렇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경기도가 문화재 주변 난개발을 위한 거리 철폐를 조건부로 제시하자 문화유산을 뒷거래의 흥정물로 전락시킨다는 하소연들이 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심각하게 우려할 점은 행정기관의 행위나 문화기관들의 사업에 목표이자 수단은 ‘시민(공공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특정인의 권리를 위한 기관 통·폐합이나 소수 땅 부자들만을 위한 문화유적이나 환경보전 지역의 난개발이 이뤄진다면 경기도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경기도에서 권력을 누리고 사는 분들! 들어보시라. “저는 청년시절에 만국의 민중들이 공존하고 존중하며 사는 세상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필자의 졸고를 읽어주신 경기도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황 평 우 문화연대문화유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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