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와 거닐듯 ‘상큼·발랄한 음악산책’
추석연휴가 끝난 지난달 28일 고양 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이같은 형식의 색다른 공연이 열렸다. 뮤지컬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한정림이 초대하는 뮤지컬 콘서트 한정림의 음악일기 네번째 이야기 ‘산책’. 콘서트 제목이 말해주듯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한정림과 그의 음악친구들이 관객들과 교감을 나누는 아주 색다른 무대였다. ‘한정림의 음악일기’는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음악을 작곡하고 있는 한정림이 피아노, 색소폰, 바이올린, 첼로 등 음악동료들과 앙상블을 이뤄 행복한 이야기를 펼쳐내는 뮤지컬 콘서트. 지난해 4월 동숭아트센터, 같은해 9월 국립극장, 올해 4월 아르코예술극장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 무대였다.
공연이 진행된 별모래극장은 마치 TV의 음악 프로그램 스튜디오인듯한 느낌의 아늑하고 편안한 공연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관객들이 마음 푹놓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부담없는 무대 세팅과 함께 영화배우를 사회자로 초청하는 배려까지. 그래서인지 흥분에 앞서 부담을 느껴야만 했던 다른 공연들에 비해 이날 무대는 부담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음미할 수 있었다.
공연은 3개 프로그램으로 나눠 진행됐다. 1부는 ‘쉿, 조용한 이야기’란 주제로 피아노를 중심으로 클래식 위주로 꾸몄고 2부는 탱고 뮤지컬 ‘나의 왼손’이란 주제로 소설가 한강씨와 몇년째 작업하고 있는 탱고뮤지컬 ‘나의 왼손’을 쇼케이스 형식처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마지막 3부는 ‘수줍게 말하는 나의 이야기’로 자신이 작곡하고 편곡한 팝과 재즈를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찢어진 청바지와 하얀 블라우스 등 편안한 복장으로 무대에 선 한정림은 자신이 음악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곡부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들까지 하나씩 넣어 연주하는 시간을 만들어 나갔다. 그의 여행에는 손진(색소폰), 이선정(바이올린), 권나형(첼로), 이재학(일렉베이스·콘트라베이스), 서희(드럼·소악기), 박미향(신디사이저), 특별 게스트 보컬 황혜나 등까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했다. 진행자로 초청받은 영화배우 김태우는 편안한 진행으로 가을밤 산책에 함께 하며 관객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줬다.
오프닝은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며 클래식곡 ‘산책’을 자신이 직접 피아노 변주곡으로 열었다. 이어 모차르트의 피아노 3중주 다장조 2~3악장을 연주하고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Fou You’를 연주했다. 2부 무대는 국내 최초의 탱고뮤지컬 ‘나의 왼손’에서 선보이게 될 정열적인 탱고뮤지컬 음악들로 채워졌다. 시종일관 미소 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무대를 이끌어 나간 한정림은 무대 한켠에 마련된 작은 티테이블에서 사회자 김태우와 대화하듯 탱고에 대한 해설과 그녀 곁에서 함께했던 따뜻하고 감미로운 팝, 재즈 신곡들을 소개했다. 뮤지컬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는 배우 조유신·이은정이 특별 출연해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극중대사를 하며 국내 최초로 제작하는 탱고뮤지컬 ‘나의 왼손’을 미리 만나보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어 보컬리스트 황혜나가 한정림과 그의 친구들의 연주에 맞춰 진한 재즈풍의 곡을 선사, 한정림의 음악세계와 작품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특히 아버지(한정림의 아버지 한익평씨는 우리나라 뮤지컬을 개척한 연출자였다)의 70세 생일을 기념해 작곡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탱고 다모레’ 연주는 첼로와 피아노의 어우러짐이 돋보였다.
마지막 3부 세번째 수줍게 말하는 ‘나의 이야기’는 스윙에서 절절한 탱고까지(Musical Pop·Jazz· Tango) 다채롭게 꾸며졌다. 재즈연주자들이 흔히 보사노비로 연주하는 영화 ‘흑인 오르페’의 삽입곡 ‘카니발의 아침’을 스윙으로 편곡해 콘트라베이스, 드럼, 피아노 등이 조화를 이룬 멋진 음악으로 연출해냈고 블르스 곡 ‘길’과 재즈곡 ‘러브레터’은 보컬 황혜나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타고 관객들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이날 공연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느낀 감정을 표현한 펑키스타일의 연주곡 ‘샤워’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알토 색소폰, 일렉베이스, 드럼, 신디사이저, 피아노 등으로 편성된 ‘샤워’는 흥겹고 경쾌한 리듬으로 관객들이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는 흥겨운 자리를 만들었다.
이날 무대에선 한정림 자신의 자작곡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던 곡과 새로운 의미로 각색한 기존의 재즈곡들까지 다양한 곡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절제된 감성이 돋보이는 탱고가 좋았고 한없이 우울할 때 여백 사이에서 울 수 있는 재즈가 그랬다. 작곡자 한정림의 세련되지는 않은 말투는 오히려 친근함을 전해줬고 피아노, 색소폰, 바이올린, 첼로 등 감미로운 앙상블과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담긴 2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는 유익한 저녁이었다.
아침에 산책하듯 감미로우면서도 잔잔한 노래들과 만난 즐거운 산책이었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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